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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 살해한 20대 조현병 아들, 소극적 초동대처에 "경찰은 날 못잡아가"

중앙일보

입력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조현병을 앓는 아들이 살해 위협을 한다며 경찰에 신고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한 60대 아버지가 결국 한 달 뒤 아들에 의해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유족 측이 “도와달라”는 구조요청을 경찰이 외면했다며 경찰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경기 남양주 남부경찰서는 지난 14일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A(29)씨를 구속했다. A씨는 지난 5일 남양주시 한 빌라에서 아버지 B(60)씨에게 둔기를 휘둘러 살해한 뒤 주검을 화단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B씨의 조카라고 밝힌 청원인은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29살 아들을 혼자 키우며, 성실하게 생활하는 평범한 가장이던 삼촌이 어린이날을 맞아 아들을 찾아갔다 흉기로 맞아 사망한 후 베란다 밖으로 던져졌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청원인은 A씨가 2015년 무렵부터 조현병을 앓았고, 이후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지내다 2019년부터는 아버지인 B씨를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삼촌은 위협으로 인해 2019년부터 아들과 함께 자지 못하고 인근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잠을 자고 출근했다”며 “모친인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무섭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아들을 돌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음식과 생활비를 챙겨줬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그때마다 아들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담배, 오토바이, 자동차)을 사달라고 이야기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집안 물건을 부수거나 아버지를 위협하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촌이 흉기를 버리면 아들이 또 흉기를 구매해 살해 위협을 가했고 삼촌은 결국 2021년 4월 5일, 이전에 신고한 적이 있었던 C파출소에 신고한 후 경찰들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고 덧붙였다.

청원인은 “그러나 당시 C파출소에서 ‘동행할 경찰이 없다’며 D파출소에 지원요청을 했다”며 “D파출소는 거리가 있어 출동시간이 지연됐고 초기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아들이 ‘아버지와 잠시 싸웠을 뿐’이라고 하자 인권문제라며 입원을 강제로 진행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며 “가족들이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경찰은 특별한 답을 주지 않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집 안에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낙서가 사방에 적혀있었고, 집 안 가구들을 까만 천으로 가리는 등 조금만 둘러봐도 아들의 상태와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지만 경찰은 ‘위협당할 때 112에 신고해라’, ‘눈으로 봐야 강제로 입원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할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국 출동한 사설 구급대도 ‘경찰 매뉴얼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하며 돌아갔다”며 “경찰이 이렇게 돌아가자 아들은 ‘경찰은 날 못 잡아가’ 등의 발언을 하며 무서울 것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별다른 조처를 받지 못한 아버지는 결국 한 달 뒤 아들에 의해 살해됐다. 청원인은 “2021년 5월 5일 사건 당일 아침 7시, 삼촌은 할머니한테 ‘어린이날인데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다 줘야지’라고 하며 마트에 갔다가 아들 집에 간다고 이야기하며 집을 나섰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B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청원인의 가족은 경찰에 이를 신고했다. 청원인은 “저희 아버지가 C파출소에 찾아가 ‘집에 조현병 환자가 있고, 평소 살해 위협을 당한 적이 많았다’고 얘기한 뒤 동행을 요청했다”며 “경찰이 ‘곧 출동할 테니 먼저 가 있어라’ 해서 아버지가 먼저 삼촌 집으로 갔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이후 현장에 경찰이 도착했으나 인기척이 없자 경찰은 ‘지구대로 돌아가 112에 실종신고를 하라’고 말하며 집 근처를 둘러보지 않고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이튿날인 6일 저희 아버지가 C파출소로 돌아가 실종신고를 하려 했으나 경찰이 ‘112에 직접 신고하라’고 해 112에 실종신고와 차량 수배를 요청했다”며 “빠른 대처를 원하며 파출소까지 직접 찾아갔는데 112에 직접 그것도 ‘전화’로 신고를 하라니 아직도 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C파출소로 다시 찾아가 ‘119에 신고해 삼촌 집의 문을 열어보자’고 했으나 경찰은 인권 문제와 체포 영장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강제로 문을 열 수 없다고 했다”며 “또 실종신고라 수사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연락을 드리겠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B씨는 6일 오전 화단을 지나던 이웃에 의해 발견됐다. 청원인은 “어째서 주민의 신고가 있기 전까지 삼촌은 발견되지 못했을까”라며 “수사 중이니 기다리라고 할 때 말한 수사는 대체 어떤 수사였단 말이냐”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살해 사건 한 달 전, 저희의 신고로 아들의 조현병 사실을 알고 있는 C파출소는 5명이라는 경찰이 있었음에도 왜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D파출소에 지원요청을 했느냐”고 물었다.

또 “그에 앞서 직계 가족이 당사자(삼촌)가 살해 위협을 당했으며 집안 곳곳에는 아들의 일본 칼과 망치 등의 흉기가 있었음에도 왜 경찰은 계속해서 ‘인권문제’라며 입원을 시킬 수 없다고 했느냐”고 했다.

청원인은 “자신의 아버지를 흉기로 내리쳐 두개골과 갈비뼈를 골절시키고 베란다 밖으로 던진 후 아버지 차량으로 도주한 아들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형이 10년 정도라고 한다”며 “출소 후 남은 가족들과 선량한 시민의 안전은 이제 누가 책임져주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그토록 말한 인권에 저희 삼촌의 인권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며 “경찰을 향한 ‘도와달라, 살려달라’는 저희 삼촌의 구조요청은 결국 외면당하고 말았다. 저희는 경찰의 안일한 초동 수사로 인한 삼촌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가해자(아들)의 형을 늘릴 수 있도록 국민청원을 한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당시 사설 구급대원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는데 현장에서의 판단으로는 강제 입원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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