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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해리스 "난 韓치맥 광팬, 그러나 콧수염 논란 불쾌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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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아름다운 한국을 구석구석 찾아다니고, 맛있는 한국 음식과 술을 즐긴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와 부인 브루니. 해리 해리스 전 대사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와 부인 브루니. 해리 해리스 전 대사

지난 1월 한국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중앙일보와의 단독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생활을 이렇게 소회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 대사 '솔직 인터뷰' #"내 집안 공격하는 것엔 실망" 섭섭함 피력 #"나는 한국 프로야구와 치맥 광팬 됐다"

그러나 그는 “인종차별로 날 공격한 것은 유감“이라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일각에서 그를 공격한 데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해리스 전 대사는 이임 후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집을 구해 부인,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전원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근황을 사진과 함께 전했다.

주한 미국 대사직을 마치고 어떻게 지내나.
잘 지내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바쁘다. 우선 새집으로 이사했고, 가구와 트럭을 새로 샀다. 우리 동네를 알아가는 중이다. 하버드 대학, 플레처 스쿨, 웨스트포인트(미 육사), 미국 대사협회 등에서도 강연을 했다. 내가 이임하기 전 약속했던 강연들이다. 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마크 리퍼트 전 대사(해리스 전 대사의 전임자)와 함께 출연했다. 현재 미 국방대학교에서 수석 고문으로 있으며, 한 항공우주 컨설팅 회사의 자문팀에도 합류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낚시광이다. 그를 잘 아는 지인은 “해리스 전 대사는 휴가 때 미국 곳곳에서 낚시를 즐겼는데, 콜로라도 강이 최고의 낚시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콜로라도로 거처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집에서 콜로라도 강까지는 차로 30분도 안 걸린다고 한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거처인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찍은 일몰 사진.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거처인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찍은 일몰 사진.

해리스 전 대사는 “봄이라 요즘 강과 저수지를 찾아다니며 낚시를 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주한 대사로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한국 국민과 함께 일하고,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직접 보고, 한국의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고, 주한 외교단의 일원으로 멋진 친구를 사귄 게 소중한 추억이다. 한국이 신종 코로나 전염병(코로나 19)을 모범적으로 극복한 데 감명받았다. 한국이 규칙을 준수하고, 과학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6ㆍ25 전쟁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잊지 않은 사실에 감동했다. 한국에서 설악산ㆍ북한산ㆍ한라산을 올랐고, 한국의 9개 도를 다 돌아다녔다. 특히 제주ㆍ남해ㆍ부산ㆍ거제ㆍ파주는 아름다웠다. 브루니(해리스 전 대사의 부인)는 제주에서 해녀와 함께 했던 물질을 잊지 못한다. 물론 우리 부부는 서울과 하비브 하우스(미 대사관저)에서 지낸 것을 좋아했다. 난 한국 프로야구와 치맥의 광팬이 됐다.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울릉도와 강원도 화진포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과 김일성 별장을 가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지난해 6월 주한 미국 대사관에 인종차별 반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글귀는 인종 차별과 경찰 만행에 대한 항의를 나타낸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인종 차별에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외교가에선 해리 해리스 전 대사의 뜻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주한 미국 대사관

지난해 6월 주한 미국 대사관에 인종차별 반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글귀는 인종 차별과 경찰 만행에 대한 항의를 나타낸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인종 차별에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외교가에선 해리 해리스 전 대사의 뜻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주한 미국 대사관

아쉬웠던 일이 또 있다면.
몇몇 정치인들과 언론 매체가 인종적 배경을 걸고 나를 공격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인종적 배경이) 대사 업무와 관련 있는 것처럼 여겼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사로서의 내 직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누가 대사로 오더라도 겪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집안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실망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해군 대장에 올랐다. 한ㆍ일 갈등이 심해지면서 여권 일각에선 그가 일본계라는 배경을 부각했다.

그는 2018년 7월 주한 대사로 부임하면서 콧수염을 길렀다. 한 시민단체는 해리스 전 대사의 사진에서 콧수염을 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었던 지난해 1월 해리스 전 대사를 겨냥해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라고 비난했다.

일부에선 당신의 콧수염을 놓고 일본 강점기의 조선 총독을 연상케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매우 불쾌했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민주주의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에서 이 같은 인종차별을 겪을 줄 생각도 못 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해 7월 25일 서울의 한 이발소를 찾아 면도를 받았다. 주한 미국 대사관 트위터 계정 캡처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해 7월 25일 서울의 한 이발소를 찾아 면도를 받았다. 주한 미국 대사관 트위터 계정 캡처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 콧수염 면도 전후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 콧수염 면도 전후

그는 결국 지난해 7월 “콧수염을 기르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기엔 서울의 여름은 매우 덥고 습하다”며 이발소에서 콧수염을 깎았다.

“북한, 핵 야망 포기 않으려 해 협상 어려웠다” 

당신이 주한 대사로 재직할 때 미국은 북한과 여러 번 정상회담을 열고 비핵화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구체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북한과 협상에 참여한 고위급 인사로서 가장 어려웠던 게 무엇이었나. 북ㆍ미 협상에서 난제는 무엇인가.
구체적 성과가 없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2017년 한반도의 상황이 엄중했음을 기억한다. 당시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실험 도발이 최고조에 달했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의 1차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 사는 시민과 외국인은 평온하고 일상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19는 여기서 논외다. 북한이 핵 야망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이 어려웠다. 핵을 포기하는 게 북한 주민에게 더 나은 삶, 더 나은 생활 수준, 그리고 더 밝은 미래를 단번에 가져다준다고 해도 말이다.
지난해 7월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 트위터

지난해 7월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 트위터

해리스 전 대사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로 경고했을 때 태평양 사령관(현 인도ㆍ태평양 사령관)으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미군을 지휘했다.

2017년을 되돌아보면, 한반도에서 제2의 6ㆍ25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높았나.
당시 우리는 어떤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하고 있었다.

“한국, 중국서 경제보복 받았으니 잘 알 것” 

미국은 한국이 쿼드(미국ㆍ인도ㆍ호주ㆍ일본의 안보 협의체)에 참가하기를 원한다고 보나. 한국이 쿼드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는 2016년 인도 라이사나 전략 대화에서 연설한 이후 쿼드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올해 미ㆍ인ㆍ호ㆍ일 4개국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서 실질적 협력을 통해 성과를 내는 데 전념한다’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쿼드를 ‘이 지역에서 실질적인 미국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평가했다. 쿼드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엔 코로나19, 기후 변화, 기술 등이 포함돼 있다. 쿼드 국가들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을 지지한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에선 강제와 경제 보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과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잘 알 것이다. 한국의 쿼드 참여 여부에 대한 질문은 청와대가 가장 많이 받을 것이다. 쿼드엔 4개국만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쿼드 국가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쿼드 회원국이 된다는 것을 좋은 기회로 봐야 한다. 전적으로 한국에 달린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9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이임하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9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이임하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지난 몇 년간 한ㆍ미동맹이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이 원인인가.
나는 동맹 관계가 나빠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ㆍ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70년 넘도록 양국이 협력 관계와 동맹 관계를 이어왔지만, 이견은 생길 수 밖에 없다. 미국과 한국이 이견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동맹의 강점을 보여주는 증거이지, 동맹의 약화를 보여주는 징후는 아니다. 나는 동맹이 중요하다고 늘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해 매우 기쁘다. 동맹은 미국 외교 정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말했듯이 '동맹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최근 '동맹은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한국과 미국은 남북 협력 사업과 대북 제재 관련 사안을 조율하기 위해 2018년 한ㆍ미 워킹그룹을 만들었다. 북한은 한ㆍ미 워킹그룹 때문에 남북 협력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당시 “남북 협력은 비핵화 진전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부 일각에선 해리스 대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다.

2017년 8월 해리 해리스 전 대사(오른쪽)는 당시 태평양 사령관으로 경북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기지를 새뮤얼 그리브스 미사일방어청장(왼쪽부터),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한ㆍ미연합사령관과 함께 둘러보고 있다. 주한미군

2017년 8월 해리 해리스 전 대사(오른쪽)는 당시 태평양 사령관으로 경북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기지를 새뮤얼 그리브스 미사일방어청장(왼쪽부터),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한ㆍ미연합사령관과 함께 둘러보고 있다. 주한미군

당신이 당시 한ㆍ미 워킹그룹의 효율성을 설명하면서 대북 제재에 대한 한ㆍ미 시각차가 드러났다는 관측이 있었다.
동맹국 사이에 불신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서술의 또 다른 사례다. 의견 차이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한ㆍ미 워킹그룹의 효과를 청와대, 외교부, 그리고 통일부가 알게 됐다는 점이다. 한ㆍ미 워킹그룹이 없었다면 한ㆍ미는 그 비슷한 협의체를 만들었어야 했다. 한ㆍ미 워킹그룹은 혼돈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질서를 만들어냈다. 스티브 비건 전 대북 특별대표와 이도훈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공식적으로 만나면서 개인적 친분을 쌓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대북 정책을 검토하면서 비건 전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원래 주호주 대사로 임명됐다가, 부임하기 전에 주한 대사로 임지가 바뀌었다.
여러 번 말했듯이, 나는 중요한 시기에 주한 대사를 역임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미국 대사로 재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으로 한국만한 나라가 없다. 또 미국의 우방국이자 전략적 동맹국으로서 한국만한 나라가 없다.

해리스 전 대사는 고양이 사랑으로 유명하다. 로물루스와 발렌티노란 고양이 2마리를 기르고 있다. 코로나 9 때문에 재택 근무를 하던 지난해 최고의 운동법으로 ‘고양이 들어 올리기’를 추천해 화제가 됐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해 4월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할 때 건강을 지키는 운동법을 재밌게 알리면서 고양이 2마리를 소개하고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 트위터 계정 캡처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해 4월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할 때 건강을 지키는 운동법을 재밌게 알리면서 고양이 2마리를 소개하고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 트위터 계정 캡처

로물루스, 발렌티노는 어떻게 지내나.
잘 지낸다. 콜로라도에서 사슴, 독수리, 벌새, 산사자, 곰들을 지켜보길 좋아한다. 나와 브루니도 마찬가지만, 하비브 하우스가 그립다.

이철재ㆍ유지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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