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방역위반 혼날래" 주인 툭툭 건드렸다···노래방 살인사건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2일 오전 인천시 중구 신포동 한 노래주점에 출입 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30대 업주는 지난달 22일 오전 2시쯤 자신이 운영하는 이곳 노래주점에서 40대 남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전 인천시 중구 신포동 한 노래주점에 출입 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30대 업주는 지난달 22일 오전 2시쯤 자신이 운영하는 이곳 노래주점에서 40대 남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저녁 A씨(41)는 지인과 함께 인천시 중구의 한 노래주점으로 들어섰다. 한번 방문한 터라 익숙한 곳이었다. 선불금을 낸 이들은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오후 10시 50분쯤 지인이 먼저 집에 간다며 일어섰다. “더 마시겠다”며 홀로 남은 A씨는 다음날 새벽녘이 돼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계산과정에서 업주 B씨(34)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추가 요금을 내야 했지만, A씨가 돈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는 돈이 없다며 버텼다. B씨를 툭툭 건들면서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혼나고 싶나”고 말했고, 112에 신고 전화도 했다. 제한시간 외에 영업하면 과태료를 부과받는 노래주점의 맹점을 파고든 것이다. 화가 난 B씨는 A씨를 상대로 주먹과 발을 이용해 무차별 폭행을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엔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A씨는 결국 살아서 노래방을 나가지 못했다.

살인을 저지른 B씨는 가게 내 한적한 방에 시신을 둔 채 고민에 빠졌다. 그는 지난달 22일 오후 6시 24분쯤 노래주점 인근 가게에서 14ℓ짜리 세제 1통과 75ℓ짜리 쓰레기봉투, 테이프 등을 샀다. 같은 날 오후 3시 44분쯤 노래주점 앞 음식점을 찾아가 외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지난달 24일 A씨 시신을 훼손하고 자신의 승용차에 실었다. 유기 장소를 찾아 헤매면서 망자의 소지품을 인천 곳곳에 버렸고, 인천 부평구 철마산 중턱에 시신을 유기했다. 경찰은 B씨가 지난달 26~29일 사이 시신을 철마산에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추궁에 범행 자백 

12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신항 한 공터에서 경찰관들이 지난달 22일 인천 한 노래주점에서 실종된 40대 남성씨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송도신항 한 공터에서 경찰관들이 지난달 22일 인천 한 노래주점에서 실종된 40대 남성씨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가족이 그를 찾아 나섰다. A씨의 아버지는 지난달 26일 “아들이 귀가하지 않고 있다”며 실종신고를 했다. A씨의 휴대전화의 마지막 위치는 B씨의 노래주점을 가리켰다. 경찰이 노래주점 곳곳을 뒤졌지만 A씨는 없었다. B씨는 경찰에 “A씨가 지난달 22일 오전 2시 10분쯤 술값 문제로 실랑이하다가 나갔다”고 했다. 폐쇄회로(CC)TV에는 A씨가 나간 모습이 없는 상황. 경찰과 B씨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경찰은 주점 내부에서 발견된 A씨의 혈흔, A씨와 B씨가 주점에서 단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토대로 B씨에 범죄 혐의점이 있다고 봤다. 지난 12일 B씨를 체포했고, 계속된 추궁에 B씨도 범행을 자백하며 시신 유기 장소를 털어놓았다. 경찰은 12일 오후 철마산에서 훼손된 A씨 시신을 수습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B씨는 “A씨와 술값 때문에 시비가 붙어 몸싸움하다가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B씨에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 등으로 구속 영장을 신청하고 정확한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긴급성·위험성 없다고 판단, 미흡했다”

한편 A씨가 직접 112에 신고한 직후 숨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2시 5분쯤 “술값을 못 냈다”며 112에 신고했다. 그러나 인천경찰청 112 치안 종합상황실 근무자는 관할 경찰서에 출동 지령을 내리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노래주점의 영업이 금지된 시간대였지만, 신고를 받은 상황실 근무자는 구청에 집합금지 위반 통보도 하지 않았다. 신고자의 위치도 조회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범죄 피해 신고는 하지 않았다”며 “욕설 섞인 말을 했지만, 상대방은 별소리가 없었고 피해자 목소리 톤도 차분했다. 싸우는 소리 등 소음도 없어 종합적으로 볼 때 긴급성이나 위험성이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다만 “신고 접수 경찰관이 ‘제가 알아서 하는 거예요’라고 피해자의 말을 신고 취소 의미로 받아들이고 먼저 끊은 점, 업주의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를 고려하지 않은 점은 미흡했다”며 “직무교육을 강화하는 등 조치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