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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더 테러 라이브' 제작자, 영화계 맏형 이춘연[1951~2021.5.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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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 영화 '부당거래'에 카메오 출연한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사진 CJ ENM

류승완 감독 영화 '부당거래'에 카메오 출연한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사진 CJ ENM

‘여고괴담’ 시리즈를 제작한 충무로 파워맨 이춘연 씨네2000 대표가 5월 11일 별세했다. 향년 70세.
고인은 약 40년간 영화 40여편의 투자·제작·기획에 참여한 제작자이자 한국영화계 각종 이슈와 대소사를 챙긴 '맏형'으로 통했다. 이 날 외부 회의에 참석했던 고인은 몸에 이상을 느껴 귀가한 뒤 갑작스레 쓰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인회의 이사장 등 맡아 #영화계 갖은 이슈 챙긴 '맏형' #550만 관객 '더 테러 라이브'등 #약 40년간 영화 20여편 제작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고인은 처음에는 극단 동인무대‧현대극장 등의 창단 멤버로 연극 기획‧제작에 몸담았다. 1983년 충무로에 입성, 화천공사·대진엔터프라이즈‧황기성사단‧MBC프로덕션 등을 거치며 기획실장‧기획제작담당 등으로 이장호 감독의 ‘과부춤’(1983), 김기영 감독의 ‘바보사냥’(1984),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같은 굵직한 감독 작품에 참여했다.

1993년 영화제작사 성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독립했고, 1995년 씨네2000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창립작은 심혜진‧진희경 주연 공포 스릴러 ‘손톱’(1994). 이후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이명세 감독의 ‘지독한 사랑’(1996),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1997) 등 작가주의 영화를 비롯해 이성재‧심은하 주연 로맨스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송혜교 주연 사극 '황진이'(2007), 김윤석 주연 추적극 ‘거북이 달린다’(2008) 등 대중영화를 다양하게 제작했다.

공포영화 '여고괴담' 시리즈로 호러퀸 배출 

'여고괴담'(감독 박기형, 1998). 사진=씨네2000

'여고괴담'(감독 박기형, 1998). 사진=씨네2000

대표작은 ‘여고괴담’ 시리즈다. 1998년 나온 1편은 한국형 학원 공포물이란 새 장르를 개척하며 흥행에 성공, 한국 공포물이라면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던 인식을 바꿔놓았다. 또 신작마다 ‘호러퀸’을 탄생시키며 신인 여성 배우의 등용문이 됐다. 최강희·박진희·박예진·김규리·공효진·박한별·송지효·김옥빈 등이 ‘여고괴담’ 출신이다. 신인 김태용‧민규동 감독이 공동 연출한 2편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동성애 소재를 성장담에 버무려내 작품성으로 주목받았다. “한국 입시·교육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학교 자체가 공포고, 창살 없는 감옥이다. 또 괴담 하나쯤 없는 여고도 없다.” 고인이 남긴 제작자의 변이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공개한 ‘여고괴담’ 6편은 제작자로서 마지막 작품이 됐다.

'더 테러 라이브' 550만…"남과 달라야 한다"

씨네2000 창립 20주년인 2013년에는 신인 김병우 감독이 연출한 하정우 주연 재난영화 ‘더 테러 라이브’로 550만 관객을 돌파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 생전 여러 인터뷰에서 고인은 “남과는 확실히 달라야 한다”는 제작 철학을 밝히곤 했다.

2000년 한국영화 발전과 진흥을 위한 사단법인 영화인회의 설립에 앞장서, 이사장을 맡아왔다. 부산국제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가 출범하는 데 기여했다. 올해 19회째인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집행위원장 안성기)엔 첫 회부터 집행위원 겸 이사 등으로 참여해왔다. 또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경찰청장, 장률 감독의 '경주'에서 능을 지키는 남자, ‘더 테러 라이브’의 대통령 등 영화 카메오로도 단골 출연했다. 2009년 올해의 여성영화인 시상식에서 제작자로서의 공로로 남성 최초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유족은 부인과 두 아들 등이 있다. 장례식은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장례위원장을, 신영균·정진우·임권택·황기성·손숙 등 원로 영화인들이 장례 고문을 맡았고, 감독·배우·제작자를 망라한 여러 영화인들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했다.
고인의 별세 이후 지난 10월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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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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