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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공영성이라는 단어의 오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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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노골적인 친정부 편향으로 비판받는 공영라디오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 지난해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오른쪽)이 출연해 미국의 모더나 백신은 불안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노골적인 친정부 편향으로 비판받는 공영라디오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 지난해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오른쪽)이 출연해 미국의 모더나 백신은 불안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 정부 들어 심하게 오염된 단어 중 하나가 공공성, 공영성이 아닐까 한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는 토지 공공개발이 소수 공직자의 배불리기였다는 점을 드러냈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 신도시 개발 공약을 내걸면 LH 직원들이 정책을 짜주면서 (정치적) 라인이 생긴다. 과거부터 LH는 정치권의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정의로운 정부가 직접 돈을 거둬 집을 지어주는 개발 방식이 문제를 일으켰다.” 건축가 유현준의 진단이다.
 전파라는 공공재를 사용하는 지상파, 그중에서도 상업 미디어가 하지 못하는 공적 책무를 지닌 공영방송들은 어떤가. 편파·불공정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정권 따라 코드가 바뀌니 정치적 독립성도 요원하다. 극단화된 갈등을 중재하기는커녕 갈등의 당사자로 참전하기도 한다. 40년째 그대로인 KBS 수신료 인상에 여론이 싸늘한 이유다.
 압권은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라디오 TBS 교통방송, 거기서도 간판이라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다. 김어준의 노골적인 편향성, 무책임한 음모론 설파 등은 여기서 더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프로그램 폐지 청원이 34만명을 넘자 ‘김어준 구하기’에 여권 인사들이 줄줄이 등판했다. 정권이 알아서 실드를 쳐주는 ‘특수관계’다. 하긴 “2011~2012년 정치 신인이던 문재인을 띄우기 위해 드라마틱한 서사를 만들고, 대중에게 크게 각인시킨 게 김어준의 나꼼수”(김내훈『프로보커터』)였다.
 젊은 미디어 연구자 김내훈에 따르면 김어준은 나꼼수 시절부터 “이미 존재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결집하는 데 머물고 반대 진영 설득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꼼수의 토대는 정치 부족주의”였다. 김어준이 “자기 주장이 일개 음모론에 불과할 수 있음을 숨기지 않고, 믿을 사람만 믿고 아닌 사람은 무시하라는 무책임한 메시지”를 고수하는 이유다. 이런 ‘정치 부족주의’가 공영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이고, 여권 인사들로부터 ‘참언론인’으로 추앙받는 괴이한 상황이다.
  여권은 ‘공영포털론’까지 들고 나왔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기존 포털이 저널리즘과 공론장을 망가뜨리고 있다며 “정부가 공적 기금을 이용해 공영포털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포털의 기사배열 기준(알고리즘)을 정부위원회가 점검하는 법안을 내놨다. 4·7 재·보선 참패 등 '못 되면 언론 탓' '불리하면 가짜뉴스'라고 연일 언론을 압박하는 여권이 포털까지 저격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경기도는 TBS 교통방송과 같은 ‘경기도형 공영라디오’ 설립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민영라디오 경기방송이 폐업한 빈자리를 노리면서다. 최근 공영라디오 설립 조례안이 도의회를 통과했는데, ‘도청 부서로의 공영방송 편입’ ‘방송업무 위탁 제작·편성·인사권까지 포괄하는 도지사 권한’ 등 독립성이 의심스러운 부분이 적잖다. 경기도 측은 내년 5월 이후 개국이라 이재명 지사의 대선 가도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지만, 이 지사 개인을 떠나 ‘도정 홍보방송’ ‘제2의 교통방송’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통위원회는 이달 중 경기방송이 반납한 라디오 주파수 신규 사업자 공모를 하는데, 공영라디오 외에 민간 사업자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추진’ 등을 방송 공공성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영방송 이사들이 여야 불문하고 정치적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을 막고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이 바뀌어선지 집권 4년 차가 되도록 달라진 게 없다. 대통령의 정치적 우군이던 언론노조마저 “민주당이 진짜 언론 개혁에는 관심 없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언론 자유 침해 소지가 크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규제 법안을 대거 발의하며, 그들만의 ‘언론개혁’이란 걸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다. 통제 만능, 역사의 시계를 너무 되돌렸다.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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