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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의 ‘반일’ 현상 오보·과장 여전히 많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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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지난 3일 친환경급식울산연대 회원들이 울산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지난 3일 친환경급식울산연대 회원들이 울산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얼마 전 한국 드라마에 빠진 일본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의문점을 몇 가지 물어보는데 “스시나 사케가 나오는 건 괜찮은 거야?”라는 질문도 있었다. 순간 무슨 뜻인지 몰라서 반응을 못 하고 있는데 친구는 다시 물어봤다. “일본 제품이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한국 시청자가 싫어하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K드라마 속 스시·사케 나오면 #한국 시청자 싫어하는지 물어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양국 갈등 아닌 국경 넘는 건강 문제 #김미례 감독 ‘동아시아반일무장…’ #가해·피해 복잡함 표현, 일본서 관심

한국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스시는 이미 한국에 정착해서 별로……”라고 갸우뚱거렸다. 일본에서 카레라이스를 보고 인도라고 생각 안 하는 거랑 비슷한 걸까. 2019년 여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퍼졌을 당시에는 드라마에 사케가 나오면 반감을 가지는 시청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7월에 일본에 귀국해서 올해 3월 초에 한국에 다시 오니까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을 느꼈다. 일본에 있을 때도 한국에 관한 보도는 많이 보는 편이지만 역시 한국에 들어오니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때 손님이 없어졌던 일식집에 줄 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일본 맥주도 다시 팔리고 있다. 불매 운동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면서 한·일 간 왕래가 어려워지자 일본에서는 한국의 지금 분위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니쥬’ 반일 탓 한국 데뷔 무산” 보도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아이돌 그룹 니쥬. [중앙포토]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아이돌 그룹 니쥬. [중앙포토]

그것뿐이 아니다. 한국의 ‘반일’이일본에서  자주 보도되는 영향도 있다.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오보도 많고 실제보다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나한테 ‘한국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관해서 엔터테인먼트 쪽 영향을 써 달라’는 의뢰가 왔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 것 때문에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심해져서 엔터 쪽도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상영이 중지된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엔터 쪽 영향은 특별히 없는 것 같다.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건 반일이 아니지 않느냐”는 답변을 보냈다.

일본 국내에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바다가 오염되면 어업 관계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게 되고 일반 사람들도 건강을 우려해 수산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국경을 넘는 문제다. 그런데 한국에서 반대하는 것을 ‘반일’로 보면 일본 대 한국의 구도가 만들어진다. 일본사람들 중에는 보도를 통해 ‘또 한국에서 반일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혐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이 연대할 수 있는 문제인데 아쉽다.

한국의 반일을 보도하는 기사는 일본에서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엔터와 관련된 기사면 더 그렇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걸그룹 ‘니쥬(NiziU)’가 반일 감정 탓에 한국 데뷔가 무산됐다는 기사가 화제가 됐다. 멤버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 주간지 온라인 기사였다. 나한테 “사실이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니쥬는 일본 소니 뮤직과 한국 JYP 엔터테인먼트의 합작 오디션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그룹이다. 멤버는 일본사람이지만 K-POP 풍 아이돌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방송되고 일본에서 데뷔하기 전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포스터. [중앙포토]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포스터. [중앙포토]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일 감정이 작동했다기보다 니쥬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한국에서 데뷔하기로 돼 있었는지 기사를 찾아봐도 확인이 안 됐다. 내가 보기엔 오보다. 반박 기사를 쓰긴 했지만, 니쥬가 한국의 반일 감정 때문에 데뷔 못 해서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사람도 많을 것이다.

도대체 ‘반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반일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골든위크’라고 불리는 연휴가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유행이 심해서 도쿄·교토·오사카·효고의 4곳에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돼 집에서 지내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휴관하는 영화관도 많은 가운데 미니시어터(예술영화관) 중에서는 보상금도 못 받고 계속 영업하는 곳도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 미니시어터에서 화제가 된 한국 영화가 있다. 김미례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란 1970년대 미쓰비시중공업 폭파 사건 등 연쇄 기업 폭파 사건을 일으킨 일본 좌익 그룹이다.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배나 노동 착취를 비판하는 목적이었으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서 일본에서는 터부시하는 사건이다.

나는 김 감독과 일본 배급사가 처음 미팅을 할 때부터 통역을 맡았다. 사실 1982년생인 나는 잘 모르는 사건이었지만 일본 기자들의 인터뷰를 통역하면서 높은 관심에 놀랐다. 원래 김 감독은 “(일본에서는) 관계자들 대상으로 상영회를 하고 싶다”며 극장 개봉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많은 매체가 보도하고 30개 가까운 영화관에서 상영하게 됐다.

반일·혐한 이용하는 정치인·매체 경계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장면들. [중앙포토]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장면들. [중앙포토]

일본 기자들은 먼저 “왜 한국 감독이 일본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김 감독은 기본적으로 한국 관객을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통해 한국의 가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일본인이 일본의 가해에 대해 비판하는 구도를 보고 “그전까지 한국은 피해국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가해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 인한 노동 착취 등 한국사람이 생각해야 하는 한국의 가해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 김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어떤 일본 기자는 김 감독에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반일의 뜻을 물어봤다. 김 감독은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일본에서는 요즘은 일본 정부에 비판적인 말을 하면 ‘반일’이라며 매국노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게 정말 반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기자와 관객들이 왜 이 영화에 관심을 갖냐고 하면 테러라는 수단은 잘못됐지만 일본제국주의로 인한 식민지배나 노동 착취에 대한 비판은 일본사람으로서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의식도 있는 듯하다. “일본인이 만들어야 하는 영화”라고 하는 기자도 있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멤버 중 몇 명은 홋카이도 출신이며 아이누 민족에 대한 차별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출발점이었다. 피해와 가해의 관계는 국가와 국가의 구도가 아닌 경우도 있는 것이다. 아이누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으로 인해 침략당한 과거는 일본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과도 비슷할 수도 있겠다. 반일무장전선 앞에 ‘동아시아’가 붙은 것은 그런 연대를 상기시킨다. 김 감독은 그런 가해와 피해의 복잡함을 영화로 표현했다.

‘반일’이나 ‘혐한’은 양국의 정치인이나 조회수를 올리고 싶은 매체로 인해 이용당하기 쉽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국가를 넘은 넓은 시야로 보면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를 푸는 실마리라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한국영화에 빠졌다.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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