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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고가 '결함 보고' 이유로 해고…붕괴 막을 수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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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3일(현지시간) 밤 발생한 고가철도 붕괴 사고는 ‘예견된 인재’라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4일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등은 몇 달 전부터 12호선(골든라인) 노선의 붕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당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3일 멕시코시티의 지하철 12호선 올리보스역 고가철로가 붕괴로 추락한 열차가 위태로운 상태로 놓여있다. [EPA=연합뉴스]

3일 멕시코시티의 지하철 12호선 올리보스역 고가철로가 붕괴로 추락한 열차가 위태로운 상태로 놓여있다. [EPA=연합뉴스]

2012년에 개통한 12호선은 멕시코 남부를 가로질러 약 1609km 거리를 오간다. 하루 이용객 약 450만 명으로 미주대륙에서 뉴욕시 지하철 다음으로 이용객이 많다.

멕시코시티 지하철 12개 노선 중 가장 마지막으로 개통됐지만, 개통 한 달 만에 선로에서 기계 고장이 60여 차례 발생하는 등 안전 문제가 잇따랐다. 기관사들은 탈선을 우려해 고가철도에서 속도를 줄여 운전했다고 한다. 결국 개통 2년 만인 2014년 선로에서 마모 현상이 발견돼 일부 구간을 폐쇄하고 20억 달러(2조 2520억 원)를 들여 보수 공사를 벌였다. 사고가 발생한 테손코역과 올리보스역 고가철도도 공사 대상이었다.

1년 반 뒤 재개통했지만 2017년 멕시코시티를 강타한 규모 7.1 강진에 또 한 번 타격을 입었다. 당시 고가철도를 떠받드는 기둥 곳곳에서 균열이 발견됐다. 전문가는 물론이고 인근 주민들까지 문제를 제기하자 지하철 공사는 2018년 “구조 강화 공사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4일 멕시코시티 구조대가 테손코역과 올리보스역 사이에서 추락한 열차 일부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일 멕시코시티 구조대가 테손코역과 올리보스역 사이에서 추락한 열차 일부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지하철 이용객들은 계속 붕괴 조짐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출퇴근 때마다 12호선을 이용한다는 빅토르 라라는 로이터통신에 “지하철 고가 기둥이 흔들리는 게 보여 불안했다”고 전했다. 역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마리오 알렉시스 메디나는 WSJ에 “몇 달 전부터 고가철도 주변 구조물들이 밑으로 처져 무너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멕시코시티 지하철 노조의 위험 경고도 수십 건에 달했다. 페르난도 에스피노 지하철 노조 대표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몇 달간 현장 기술자들이 당국에 보고한 결함만 수십 건에 이른다”면서 “하지만 그때마다 보고는 무시됐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고는 피할 수 있었던 인재다. 당국이 현장 직원의 경고를 들었더라면 수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당국은 “지진으로 수리한 기둥은 69번 기둥이고, 이번에 무너진 구간은 11번~12번 기둥 사이라며 부실 공사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4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시장인 클라우디아 세인바움(오른쪽)이 고가철로 붕괴 사고 원인을 전문가에 의뢰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4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시장인 클라우디아 세인바움(오른쪽)이 고가철로 붕괴 사고 원인을 전문가에 의뢰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EPA=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사고 원인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야권은 12호선 건설 당시 멕시코시티 시장을 맡았던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교장관과 현 시장인 클라우디아 세인바움에게 화살을 돌렸다.

에브라드르 장관은 당시 2012년 12월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공사를 마무리하도록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개통 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지하철 설계와 공사가 잘못됐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다.

세인바움 시장은 2018년 12월 취임 직후 지하철 재정을 긴축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지하철 등 인프라 보수 지원 사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해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인바움 시장은 취임 1년이 지났을 때까지도 인프라 유지보수 책임자조차 임명하지 않았다.

실제 세인바움 시장 취임 이후 지하철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2019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수십명이 다친 뒤에야 전수 조사가 이뤄졌다. 2020년 3월에는 지하철 충돌 사고로 사망 1명, 부상 41명의 인명피해가 났고, 지난 1월에는 지하철 본사 화재 사고로 1명 사망, 30명이 다쳤다. 야권은 지하철 유지 보수 자금 비리 의혹과 지하철역 설계 불법 변경 등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NYT와 WSJ은 2024년 대선 주자로 꼽히는 에브라드르 외교장관과 세안바움 시장이 이번 사건으로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한편 사고 구간의 건설을 맡았던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의 건설회사 Ciscsa와 멕시코 건설회사 ICA는 당국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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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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