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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피해자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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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피해자학(victimology)이란 학문이 있다. 범죄 피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위험이 있는 사람을 연구하는 범죄학의 한 갈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변호사인 벤자민 멘델존이 1956년 ‘생물·심리·사회학의 새로운 분야-피해자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뒤 피해자학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됐다.

피해자학은 주로 가해자를 연구하는 기존 범죄학과 달리, 피해자 중심의 연구를 시작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피해자를 연구해 예방과 구제책을 도출하는 것이 이 학문의 목표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들어 피해자학에 대한 논의가 확산했고, 92년 학회가 설립됐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점점 강화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피해자를 가리켜 ‘피해호소인’이라는 해괴한 용어를 만들어낸 것도 모자라,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선열들이시여! 국민들이시여! 피해자님이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졸지에 순국선열과 동급이 된 피해자는 “저는 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아니다. 도대체 왜 현충원에서 제게 사과를 하시냐”고 반발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 사과도 문제지만 피해자님이란 호칭도 부자연스럽다. 그렇게 한다고 피해자를 더 존중하는 느낌이 들지도 않는다. 피해자 뒤에 붙이는 ‘님’보다는 오히려 앞에 붙여야 할 가해자의 이름이 더 중요하다. 그들은 그냥 피해자가 아니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박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피해자는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과를 받은 뒤 “무엇이 잘못이었는가에 대한 책임 있는 사람의 진정한 사과”라고 감사를 표했다. 오 시장은 지난 22일 취임식에서 ‘왜 사과를 했느냐’는 질문에 “피해자분을 만났는데 그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못 들었다’는 말씀을 하셔서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고 답했다.

피해자는 거창한 사과나 특혜를 요구하지 않았다. 현충원 방명록 속 피해자님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제대로 된 사과 한번 받기 원했을 뿐이다. 당연히 그 사과는 오 시장보다 민주당이 먼저 했어야 했다.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