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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개발한 나라, 자국 우선주의” 비판한 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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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여유가 있을 때는 모든 나라가 한목소리로 연대와 협력을 말했지만 자국의 사정이 급해지자 연합도, 국제 공조도 모두 뒷전이 돼 국경 봉쇄와 백신 수출 통제, 사재기 등으로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발언 파장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한데도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내에 충분한 백신 공급이 늦어진 배경을 설명하면서다.

문 대통령은 ‘각자도생’에 나서는 국가가 어디인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발언 중간에 “전 세계적인 백신 생산 부족과 백신 개발국의 자국 우선주의, 강대국들의 백신 사재기”를 언급했다.

현재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백신 수출을 통제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란 점에서 향후 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 또 미국은 코로나19 주요 5대 백신 중 아스트라제네카를 제외한 4개 백신(화이자, 모더나, 얀센, 노바백스)의 개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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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난 20일 보아오포럼 영상 메시지와도 대비된다. 문 대통령은 당시 메시지에서 “백신 기부와 같은 다양한 코로나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중국도 최근 미국의 자국민 우선 백신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이 유사한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 됐다.

“문 대통령, 백신 부족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 하나”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6일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바이든 행정부가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진찬룽(金燦榮) 중국 런민대 교수의 발언을 보도하며 미국의 백신 정책을 비판했다.

외교가 안팎에선 5월 말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문 대통령의 발언 수위나 시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코로나19 대응과 북핵 문제, 미·중 간 갈등 사안에서 한국의 입장 등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이 의제로 오를 텐데 이를 앞두고 미국을 비판하는 것으로 비치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코로나 방역 실패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미국이 백신 자국 우선주의를 할 거란 것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며 “백신 도입이 늦어지면서 생긴 논란의 원인을 미국에 돌리는 것이 외교적으로 올바른 방식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백신 부족 사태를 비판하는 여론을 의식한 국내 정치용이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 문 대통령은 이날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발언 후 곧바로 “그럴 때일수록 우리도 내부적으로 단합해 지혜롭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자국민을 위한 충분한 백신 물량 확보를 이유로 외국을 지원하는 데 소극적인 것을 ‘자국 우선주의’라고 비판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백신 부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그 책임을 외부에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태화·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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