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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엔 그림의 떡’ 백신여권…美가 연방차원서 도입 않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이스라엘 코로나19 백신 그린패스. 예루살렘=임현동 기자

이스라엘 코로나19 백신 그린패스. 예루살렘=임현동 기자

코로나19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을 도입하거나 도입하려는 나라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보건기구(WHO)를 필두로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국제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논의 중인 백신 여권의 개념은 다양하다. ▶백신 접종 완료 ▶검사 음성 ▶감염 후 회복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선두로 백신여권 속속 도입 #아파서,원치 않아서 안 맞는 사람 #접종대상 아닌 16세미만 청소년 차별 #28개국 '백신 0'인 것도 서러운 판국

관광산업 국가에는 생명선 

여행이나 무역으로 먹고사는나라에 백신 여권은 생존의 문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카리브 해의 섬나라 아루바의 에블린 위버-코로이스 총리는 "백신 여권이 생명선"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이 나라로 오는 여행객이 끊겼기 때문이다.

백신 여권의 용도는 두 가지다. 1년 넘게 끊긴 해외여행 문호를 여는 것, 또 나라 안에서 다중이용시설의 문호를 푸는 데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그린패스 선두 

선두국가는 이스라엘이다. 백신 2차 접종자에게 ‘그린 패스’를 발급한다. 스마트폰에 다운받는다. ▶이름과 여권번호, 생일 등 개인정보 ▶1·2차 접종일 ▶백신 종류와 로트번호 ▶접종센터 이름 등이 담겨 있다. 로트번호는 같은 날 같은 공정으로 생산한 제품에 부여하는 숫자를 말한다. 그린 패스에는 큐알(QR)코드가 있다. 피트니스센터, 식당, 극장 및 영화관, 스포츠 경기장, 호텔, 문화 행사장 등에 들어가려면 인증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키프로스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한 여행객을 격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리스와도 비슷한 합의를 했다.

덴마크는 최근 '코로나파스(Coronapas)'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미용실과 식당, 영화관 등의 다중시설에 쓴다.

사우디·중국·싱가포르 등 속속 도입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라마단 기간에 입국을 허용하는 성지 순례객의 자격을 제한했다. 두 차례 백신을 맞았거나 14일 전 한 번 맞았거나 감염 후 회복했어야 하며 모바일 앱을 제시해야 한다. 영국 히스로 공항은코로나19 음성임을 확인해야 입국할 수 있다. 공항에서 2회 이상 자가검사로 입증해도 된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정부가 개발한 앱에 개인의 접종 상태를 담아야 한다.

중국은 3월 초 해외여행 건강증명서를 발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백신 접종과 항체 형성 여부를 담는다. 싱가포르도 디지털 건강여권 발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입국 전 모바일 앱으로 검사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유럽연합(EU)도 역내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디지털 그린 증명서'를 도입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아파서 못 맞는 것도 서러운데"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백신 여권이 일종의 특권처럼 비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선 지병 같은 의학적 이유로 백신을 맞을 수 없거나 접종을 원하지 않는 사람과 차별이 생긴다. 연령 차별도 있다. 아스트라제네카(AZ) 접종을 금한 젊은 연령이 차별을 받는다. 이스라엘은 16세 미만 청소년이 접종 대상이 아닌데, 이들은 다중이용시설 차별을 당한다.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별도 있다. 저개발국의 상대적 박탈감은 말할 것 없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 195개국 중 28개국이 아직 백신 접종을 시작하지 못했다. 접종 개시국 중 성인 인구의 20% 이상이 1회 접종한 데가 47개국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 '그린 패스' 견본 . 이스라엘 보건부 제공=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 '그린 패스' 견본 . 이스라엘 보건부 제공=연합뉴스

미국도 연방차원 도입 안해 

WHO는 이달 초 백신 불평등 문제를 들어 국내외 여행 목적의 백신여권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신 접종자가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다.

미국도 연방정부 차원의 코로나19백신여권 도입 계획이 없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6일 브리핑에서 "연방 차원의 백신 접종 여부 데이터베이스는 없다"며 "연방 차원에서 백신 접종 증명서 발급을 의무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연방정부의 목표는 미국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보호해 불공평을 초래하는 제도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백신 여권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영국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와 관련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대략 정했다. 백신 접종 여부, 검사 결과, 감염 여부 등을 담을 것"이라면서도 "도입해도 매장·펍·식당에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관리도 뉴욕타임스에 "백신 접종은 개인의 결정이며. 이 결정 때문에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계에 통용되는 백신 여권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비영리 트러스트가 '커먼 패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보안 문제, 사기 이용 우려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유효기간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백신 효과가 얼마나 갈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두 번 째 백신 접종 후 일주일부터 6개월로 유효기간을 제한했다. 감염 후 회복한 사람도 6개월 유효하다.

한국은 백신 접종률이 3%를 갓 넘은 상태라 백신 여권은 머나먼 얘기처럼 들린다. 정세균 전 총리가 이달 1일 백신 여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 전 총리는 "방역에 문제가 없는 선에서 접종을 마치신 분들이 생활 속에서 불편함이 최소화되게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해주시길 바란다"며 "국제적인 백신 여권 도입 논의에도 적극 참여해국민이 보다 편리하게 국내외를 오갈 수 있도록 미리미리 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은 디지털증명서 발급 시작 

질병관리청은 백신 여권은 아니지만 백신 접종증명서를 15일 발급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종이 증명서였는데, 이번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증명서로 진화했다. 자가격리 기준을 일부 완화하는 데 활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세부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질병관리청은 국제적으로 백신 여권을 통용하려면 국제적 협약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달 8일 기자간담회에서 "백신여권을 도입하려면 접종 가능한 연령층이 다 맞아야 한다"면서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많이 접종한 국가도 30% 정도 맞았는데 (이 정도로) 백신여권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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