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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관심 쏠린 '예방효과 92%' 러시아 백신…국내 도입 가능성은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가 개발해 공식 등록한 '스푸트니크 V' 백신.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 사이트 캡처. 연합뉴스

러시아가 개발해 공식 등록한 '스푸트니크 V' 백신.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 사이트 캡처. 연합뉴스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수급난에 국내 백신 물량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러시아 백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백신을 공개 검증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스푸트니크V를 포함한 새로운 백신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화이자나 모더나 등 mRNA 백신 물량 도입 협상에 난항을 겪자 최근 세계적 의학 학술지 ‘랜싯’에 성공적인 임상 3상 결과가 공개된 스푸트니크V 백신으로 눈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2월 임상 3상에서 '91.6%' 효과 보이며 급부상 

수원시 코로나19 제2호 예방접종센터가 문을 연 2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정현 중보들 테니스 센터에서 시민들이 예방접종을 하고 나서 이상반응을 관찰하고 있다. 뉴스1

수원시 코로나19 제2호 예방접종센터가 문을 연 2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정현 중보들 테니스 센터에서 시민들이 예방접종을 하고 나서 이상반응을 관찰하고 있다. 뉴스1

서구권에서 무시를 받던 스푸트니크V 백신이 새롭게 조명받게 된 건 지난 2월 초 세계적인 의학 저널 랜싯에 임상 3상 결과가 공개되면서다. 논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지난해 9월 7일~11월 24일 만18세 이상 1만9866명이 임상시험에 참여한 결과 91.6%의 백신 효과를 나타냈다. 화이자, 모더나에 이어 90% 이상의 효과를 가진 세계 세 번째 코로나19 백신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특히 3상 임상에선 백신 접종 그룹에서 중증 환자나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임상시험 참가자 가운데 4명이 사망했지만, 연구팀은 “백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분석했다. 당시 블룸버그 통신은 “조롱받던 러시아 백신이 유럽의 구세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러시아 정부가 전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사용 승인을 내렸을 때만 해도 코웃음 치던 서구권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마르쿠스 죄더 독일 바이에른 주지사는 “유럽의약품청(EMA)이 스푸트니크V를 승인할 경우 이 백신 250만 회분을 구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외에 프랑스, 이탈리아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스푸트니크V는 전 세계 60여 개국 승인을 받아 지난달까지 700만 명이 접종했고 EMA도 지난달 초부터 허가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위탁 생산 계약도 맺은 상태라 상대적으로 백신 물량 수급에도 용이할 것으로 보인다. 지엘라파와 자회사 한국코러스는 러시아 국부펀드(RDIF)와 계약해 스푸트니크V 백신을 5월부터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할 예정이다. 휴온스글로벌도 스푸트니크V 백신 생산을 위한 기술 도입 계약을 맺었다고 16일 밝힌 바 있다.

의료계 “접종 후 데이터 부족…안전성 우려”

일별 누적 백신 접종 인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별 누적 백신 접종 인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난 2월만 해도 "효과성이 어느정도 입증된만큼 대안으로 검토해볼만하다"는 의견이 다수 제시됐지만 최근 아스트라제네카(AZ)·얀센 혈전증 문제가 불거지면서 신중론에 무게가 실린다.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되 당장 서두르지말고 충분한 검토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임상 3상 결과 외에 실제로 접종 후 이상 반응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해서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 확보는 공격적으로 하되 이후 안전성 평가와 접종은 신중하게 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일각에선 '확보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돈 날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협상할 때 EMA나 미국 식약처 등에서 안전성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커미션을 달면 된다"며 "지금 확보 노력을 안하고 있다가 나중에 효과가 좋다고 승인이 나면 계약은 끝나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한달 전만 해도 플랜B(대안)로 국내에서 소규모 임상을 해보는 방안도 고려해볼만하다 판단했는데, 최근 혈전 문제가 생긴 아데노 바이러스 벡터 방식인 만큼 신중하게 봐야할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랜싯에 발표가 됐다는 건 어느 정도 과학계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이라면서도 “이는 어디까지나 임상 3상까지의 결과다. 아스트라제네카(AZ)나 얀센도 임상 3상에선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몇만 명 단위에서 찾을 수 없었던 문제가 실제 100만명, 1000만명 이상 접종하다 보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화이자는 매달 접종 후 이상 반응 결과가 계속 보고되는데 스푸트니크V는 현재 60개국이 사용하고 있지만 이상 반응 관련 자료가 거의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아직 사용 승인이 안 났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희귀혈전 논란 중인 AZ·얀센과 같은 ‘바이러스 벡터’ 방식

22일 오후 광주 북구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등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이날 해당 학교 학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 받아 방역당국이 학교에 이동식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학생 등 800여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뉴스1

22일 오후 광주 북구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등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있다. 이날 해당 학교 학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 받아 방역당국이 학교에 이동식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학생 등 800여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뉴스1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건 스푸트니크V 백신이 AZ와 얀센과 같은 바이러스 벡터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AZ와 얀센 백신을 접종한 후 혈소판 감소증을 동반한 희귀혈전 사례가 발생하면서 의학계에선 바이러스 벡터 방식 백신과 희귀 혈전증이 관련 있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재훈 교수는 “본질적으로 얀센과 AZ, 스푸트니크V는 희귀혈전 문제를 어느 정도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백신 수급 상황이 너무 불안정하거나 당장 유행이 급격히 확산되면 당연히 사용해야겠지만 국민이 얼마나 접종에 동의할지는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다른 백신을 못 구해서 스푸트니크V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백신 도입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안전성 부분에서 짚을 건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양동교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자원관리반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검토 여부에 대해 “자료수집과 국외의 여러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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