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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헌정질서 수호 위한 정당행위”…직권 재심청구한 검찰

중앙일보

입력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전경. 사진 연합뉴스TV 제공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전경. 사진 연합뉴스TV 제공

검찰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령을 어겨 처벌받은 전태일 열사의 모친 고(故) 이소선 여사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군사정권 당시 유죄가 확정된 판결에 대해 다시 법원에 판단을 구해 민주화 운동가였던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취지다.

북부지검, 고 이소선 여사 재심 청구

지난 2011년 9월 7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故 이소선 여사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헌화를 마치고 내려가고 있다. 김도훈 기자

지난 2011년 9월 7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故 이소선 여사 영결식에서 시민들이 헌화를 마치고 내려가고 있다. 김도훈 기자

22일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서인선)는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던 1980년 당시 계엄법과 계엄 포고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받은 민주화 운동가 5명에 대해서 직권 재심청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죄가 확정된 형사사건에 재심 사유가 발생한 경우 당사자나 법정대리인, 유족뿐만 아니라 검사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에 따른 것이다.

이번에 북부지검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대상에는 고 이소선 여사의 계엄 포고위반 사건도 포함됐다. 이 여사는 지난 1980년 5월에 계엄 당국의 사전 허가 없이 시국 성토 농성에 참여해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해 연설을 하고, ‘노동삼권을 보장하라, 민정을 이양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러한 불법 집회로 이 여사는 같은 해 12월 6일에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형의 집행은 면제됐으나 유죄가 인정됐다. 이에 북부지검은 지난 21일 검사 직권으로 재심청구를 결정했으며 유족 역시 적극적으로 재심을 원하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린 이 여사는 자신의 아들인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해 약 41년간 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해오다 지난 2011년 9월 별세했다.

“5·18 당시 헌정질서파괴 저지는 범죄 아냐”

지난해 5월 17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국립5·18 민주묘지를 찾은 유족이 묘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난해 5월 17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국립5·18 민주묘지를 찾은 유족이 묘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광주-프리랜서 장정필

북부지검은 직권 재심청구와 관련해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는 범죄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부지검은 보도자료를 통해 “12·12 군사반란 이후 신군부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헌정질서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며 “1980년 5월 18일을 전후로 발생한 헌정질서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북부지검은 이 여사의 재심 청구 외에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인물을 사전검열 없이 출판하거나 유포하는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은 4명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이 중 직권재심 청구 대상에 오른 고(故) 김모씨는 전산상에 본인과 가족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검찰이 관할 주민센터에서 수기로 작성된 개인별 주민등록표를 확보해 유족에게 연락 후 동의를 얻어 재심을 청구했다.

대대적인 과거사 반성 작업 나서는 검찰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검찰은 지난 2017년부터 대대적인 ‘과거사 반성’ 작업에 나서고 있다.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과거사 사건에 대해 사과한다는 뜻을 밝힌 이후 검찰은 ‘태영호 납북사건’ 등 과거 시국사건 6건에 대한 직권 재심청구를 시작으로 과거사 사건에 대한 직권 재심 청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9년 기준 검찰이 과거사 사건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한 인원은 500명에 달했다.

이날 서인선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고(故) 이소선 여사에 대한 직권 재심청구 역시 검찰의 과거사 반성 작업의 일환”이라며 “앞으로도 서울북부지검은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재심청구 등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고,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사의 소임을 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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