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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카터의 친구, 바이든의 멘토 떠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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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15년 10월 포럼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AP=연합뉴스]

2015년 10월 포럼에 참석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AP=연합뉴스]

“저는 선한 싸움(good fight)을 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경주를 마쳤고, 신념을 지켰습니다.”

월터 먼데일 전 미국 부통령 #84년 대선 출마, 레이건에 졌지만 #미 사상 첫 여성 부통령 후보 띄워 #NYT “진보정치의 챔피언 별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 부통령을 지냈던 월터 먼데일이 2010년 펴낸 자서전 『굿 파이트(The Good Fight)』에 쓴 문장이다. 70여 년 동안 미국의 대표적 진보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가 1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93세. 뉴욕타임스(NYT)는 “전직 부통령이자 진보주의 정치의 챔피언이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유족은 그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먼데일은 1977년부터 81년까지 카터 전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 국정을 돌봤다. NYT에 따르면 그는 대통령의 실질적 파트너로 부통령직을 수행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대통령과 함께 정보 브리핑을 듣고 참모진도 공유했다고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부통령이자 내 소중한 친구인 월터 먼데일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성명을 냈다.

1976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왼쪽)과 먼데일. [로이터=연합뉴스]

1976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왼쪽)과 먼데일. [로이터=연합뉴스]

보수적인 남부 지역 출신인 카터에게, 중북부 출신이자 진보 성향을 띄었던 먼데일은 정치 파트너로서 적격이었다. 먼데일은 재임 동안 서민들을 보호하고 의료·교육 보장을 확대하는 정책에 힘을 쏟았다. 70년대 후반 석유 가격이 급등하는 등 경제난에 빠지자, 실업자 등을 돕기 위한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 인터뷰에서 “나는 진보주의자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평생 정부가 사회의 진보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부통령 임기를 마친 뒤 그는 84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크게 패배했다. 고향 미네소타주와 워싱턴DC에서만 겨우 승리해 선거인단 13명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먼데일은 당시 국가 재정 상태를 개선하겠다며 증세 공약을 내놨는데, 유권자들은 세금 삭감과 기업 규제 완화를 내세운 ‘레이거노믹스’에 열광했다.

1984년 대선에 도전했던 먼데일 대통령 후보(오른쪽)와 제럴딘 페라로 부통령 후보. [AP=연합뉴스]

1984년 대선에 도전했던 먼데일 대통령 후보(오른쪽)와 제럴딘 페라로 부통령 후보. [AP=연합뉴스]

선거 결과는 참담했지만, 먼데일은 러닝메이트로 제럴딘 페라로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미국 주요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부통령 후보로 나왔기 때문이다. 뉴욕 3선 하원의원을 지낸 페라로는 이를 계기로 먼데일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기도 했다. 페라로는 패배 승복 연설에서 “제가 부통령 후보로 나왔다는 사실은 미국 내 여성 차별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먼데일은 정계에서 은퇴한 뒤 여러 기업의 고문을 지냈고, 미네소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주일 미국대사로 임명돼 96년까지 일했고, 98년엔 클린턴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특사로 파견됐다.

그는 농부이자 목사인 아버지와 피아노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농장이 없어 마을을 옮겨 다니며 일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이를 과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먼데일은 스무살 때 민주당 소속 휴버트 험프리의 상원의원 선거운동에 참여하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을 거쳐, 66년과 72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먼데일은 많은 정치인의 멘토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15년 한 대학 강연에서 먼데일을 자신의 멘토로 소개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여사는 “미국의 가장 헌신적 애국자인 그를 소중한 친구이자 멘토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라고 성명을 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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