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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피의자 이성윤, 검찰총장 자격 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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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해 1월 13일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장면. 차기 검찰총장 추천설이 나오는 가운데 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한 기소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울=뉴시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해 1월 13일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장면. 차기 검찰총장 추천설이 나오는 가운데 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한 기소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울=뉴시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17일 수원지검에 자진 출석해 조사받은 것은 누가 봐도 꼼수로 비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일선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한 직권남용 등 혐의로 네 차례 소환 통보를 받고도 줄곧 무시해 온 그가 갑자기 출석해 입방아에 올랐다.

이성윤, 권력형 수사 방해 논란 당사자 #검찰 독립·중립 훼손 책임부터 물어야

법조계에선 이 지검장의 행동은 그를 차기 검찰총장에 추천하려는 여권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하고 있다. 말하자면 차기 검찰총장 추천위원회가 열릴 때까지만 기소를 늦추면 총장 추천 관문을 무사 통과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이 지검장은 ‘대검이 조사 없이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부랴부랴 출석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기소를 지연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라면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다. 일반 피의자라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겠지만, 법치주의를 솔선수범해야 할 서울중앙지검장의 처신치고는 당당하지 못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피의자 이성윤’을 지난 4월 초 사퇴한 윤석열 전 총장의 후임으로 추천하려는 여권의 움직임은 상식에 정면으로 반한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신망을 얻지 못한 인물을 검찰 수장에 앉히려는 이유를 국민이 납득하겠나. 여권에서 이성윤 검찰총장 카드에 집착하는 이유를 두고도 추측이 무성하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로 이 정부 들어 ‘친정권 실세 검사’로 불려 왔다. ‘친문 검찰총장’을 내세워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등 권력형 비리 수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발상을 여권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과 법치주의에 도전하는 발상이다.

이 지검장이 물의를 일으킨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청와대와 여권이 불편해하는 검찰 수사의 결재를 미루는 방법으로 사실상 권력을 비호한다는 질타를 받아 왔다. 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할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 지검장은 또 검찰이 자신의 직권남용 혐의 등을 수사하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자신의 사건을 이첩해 달라고 요구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진욱 공수처장의 차를 타고 몰래 공수처에 들어가 면담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황제 수사’라는 비판도 들었다.

이 지검장은 검찰 출석 다음 날 “수사에 외압을 가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공수처가 처리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어떻게든 검찰 기소를 피하겠다는 심산이다.

검찰은 신속히 수사를 마무리짓고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검찰총장 추천위는 ‘피의자 검찰총장’ 추천을 강행하지 말아야 한다. 민심에 역주행하면 역풍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