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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계 반도체 전쟁 속 삼성 총수 부재가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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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회복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제조업 부활과 공급망 확보를 강조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회복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제조업 부활과 공급망 확보를 강조했다. [AP=연합뉴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5단체장이 지난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경제 회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다. 손 회장은 이날 “반도체는 4~5년 앞을 미리 내다보고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라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차세대 반도체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법 찾고, 대규모 투자 결정은 총수 몫 #경제5단체장, 이재용 부회장 사면 건의

이 부회장 사면 건의가 주목받는 건 한국 경제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 미·중 패권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일 삼성전자 등 세계 주요 반도체 관련 기업 19곳을 백악관으로 불러모았다. 미국 땅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늘려 달라는 요구였지만, 그 핵심은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가치동맹’을 만들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은 30여 년 전 과거를 연상케 한다. 당시 일본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을 넘어섰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일본에 통상압력을 가했고,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으로 이어졌다. 이후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 가치동맹 핵심은 중국에 맞서는 글로벌 반도체 생산 밸류체인이다. 중국 내에 반도체 생산기지가 있고, 14억 중국 시장도 공략해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2일 인텔과 대만 TSMC 등 경쟁사들이 백악관 회의 이후 미국 내 반도체 투자계획을 잇따라 공개한 가운데 국내 유일의 참석 기업인 삼성전자도 바이든 대통령이 내민 ‘청구서’에 어떤 식으로든 화답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다음 달 하순으로 계획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반도체 투자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에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총수의 부재로 결정이 늦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형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지난 1월 형 확정 후 한 달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비상으로 변호인 외엔 단 한 차례도 면회할 수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면회는 일주일에 단 10분, 그것도 입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든 대화를 녹취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 결정과 미·중 사이에서 대응책을 찾는 일은 이 부회장의 몫이다. 경제 5단체장이 나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정부에 공식 건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