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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흔적 ‘I.SEOUL.U’ 운명은…시민들은 “진득하게 가자”

중앙일보

입력

서울 시청광장에 설치된 'I.SEOUL.U' 조형물. 서울시 제공

서울 시청광장에 설치된 'I.SEOUL.U' 조형물. 서울시 제공

‘I.SEOUL.U(아이서울유)’의 운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지난 2015년 서울시 브랜드 로고로 선정돼 현재 사용 중인 서울시 로고의 존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I.SEOUL.U 이전 브랜드는 'Hi Seoul(하이 서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기부터 14년간 사용했다. 오 시장은 2006년 당선 직후 이 전 시장이 만들었던 브랜드인 하이 서울에 'Soul of Asia(아시아의 혼)'라는 표현을 더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아시아의 혼'이란 표현에 거부감을 표하는 등 문제가 이어졌고, 박원순 시장 체제의 서울시는 세계인을 아우르는 취지를 살린다며 기존 브랜드를 폐기하고 I.SEOUL.U를 새 브랜드로 선정했다.

수장이 교체될 때마다 서울 대표 브랜드가 바뀐 역사 때문에 이번에도 변화가 일어날지가 주목되는 것이다. 실제로 오 시장이 출근한 이후 서울시 내부망에서 이 로고가 일부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부 직원용 서울시 행정포털 인트라넷 좌측 상단 제목 위에 'I.SEOUL.U' 로고가 작게 있었는데 그게 사라지긴 했다”고 말했다. 공식 결정에 따른 게 아니라 전임자인 박원순 전 시장의 흔적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지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 시급한 문제들 많다"

서울시 브랜드 교체설이 나오자 일부 시민들은 “이제서야 정착된 브랜드를 세금을 들여가며 바꿀 필요가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외적인 것보단 내실을 튼튼하게 다져달라는 주문도 적지 않다.

잠원동에 사는 대학원생 최모(31)씨는 "지금 시점에 브랜드를 교체하는 건 세금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며 "사실 이번 임기가 길지 않은 데다가, 저런 자잘한 행정보다는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 않나"고 말했다. 'I.SEOUL.U'는 2014년 10월 서울브랜드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브랜드가 완성되기까지 총 8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이후 설치물 제작과 홍보 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또 다른 서울시민 김모씨는 "더 좋은 거로 바꾼다면 나쁠 것 없지만 'I♥NY'처럼 딱히 임팩트 있는 게 나올 것 같지 않다. 명료한 개선점이 없으면 진득이 가는 게 좋을 듯하다"며 "몇 년 주기로 바뀌면 브랜드 가치도 떨어진다고 본다"고 했다.

고모(28)씨는 "'I.SEOUL.U'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됐다"며 "서울 관광을 한 외국인들 SNS에는 인증샷이 꼭 하나씩 있더라"고 했다. 서울에서 요리사로 근무했던 핀란드인 아르토 우시탈로(33)도 "그 로고는 이미 서울만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며 "한강이나 시내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친근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I.SEOUL.U' 브랜드의 인지도는 88.3%로, 호감도는  75.1%로 나타났다. 2015년 이 브랜드를 반대했던 시민이 66.5%였던 것에 비해 개선된 수치다.

2015년 10월 28일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브랜드 선포식’에서 내빈들과 함께 이날 서울브랜드로 선정된 ‘I.SEOUL.U'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15년 10월 28일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브랜드 선포식’에서 내빈들과 함께 이날 서울브랜드로 선정된 ‘I.SEOUL.U'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박원순 표 아닌 서울시민 표"

'I.SEOUL.U'가 박 전 시장의 산물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I.SEOUL.U' 브랜드 로고 선정 시 박 전 시장은 결재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철저한 '바텀업(상향식)'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2015년 실시된 서울 브랜드 공모전에는 1만6147건의 사상 최다 작품이 접수됐고, 1000명의 현장심사단이 참여했으며, 10만명 이상의 사전투표가 이루어졌다. 사전 시민투표 결과 50%, 1000명의 현장 시민투표 결과 25%, 9명의 전문가 투표 결과 25%를 반영해 선정됐다. 박 전 시장은 오히려 최종 후보였던 'I.SEOUL.U' 'SEOULMATE(서울메이트)' 'SEOULing(서울링)' 중에 서울링을 가장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서울브랜드추진위원장이었던 김민기 숭실대 특임교수는 "처음 위원장직 제안을 받아들일 때 조건이 시민과 전문가들의 의견만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시장이 권한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박원순 시장표가 아니고, 서울시민 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브랜드에 시장 개인의 정책이나 공약·철학을 담지 말아야 하며, 시 브랜드는 전적으로 그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조건도 걸었다.

김 교수는 "브랜드 이미지는 축적되고 알려질수록 힘을 발휘한다"며 197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미국 뉴욕시의 'I♥NY'를 예로 들었다. 이어 "결정적인 흠이 있거나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전임 시장의 흔적이라는 이유로 바꾸자고 한다면 국가적 손실"이라며 "오 시장께서 현명하게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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