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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 같고 유령 같은데…요즘 잘나가는 현대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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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국 조각가 마이클 딘의 ‘삭제의 정원’. 전체 설치작업을 소장하겠다는 기관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바라캇 서울]

영국 조각가 마이클 딘의 ‘삭제의 정원’. 전체 설치작업을 소장하겠다는 기관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바라캇 서울]

전시장 바닥엔 철골을 드러낸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구겨진 책들이 뒹굴고 갤러리 유리창은 온통 하얀 스프레이로 X자가 마구 낙서 돼 있다. 공사장, 쓰레기장 같다. 서울 삼청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 조각가 마이클 딘(Michael Dean·44)의 ‘삭제의 정원’전시 현장이다.

마이클 딘의 설치작 ‘삭제의 정원’ #알리시아 크바데의 브론즈 조각 #리암 길릭의 알루미늄 구조물 등 #첨단 현대미술 작품 한국행 러시

국내 미술 애호가들의 안목과 취향이 세계 현대미술 트렌드의 시험대에 올랐다. “이게 작품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과 “굉장히 시적(詩的)이다” “재미있다”는 반응을 함께 얻는 작품들이 한국으로 몰려왔다. 더 대담해지고 다채로워진 미술계 풍경이다. 특히 3040 한국 컬렉터들을 겨냥한 ‘첨단’ 작품들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5월 1일까지 열리는 쾨닉 서울 개관전에서 전시 중인 폴란드 태생의 독일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의 자화상 조각. [사진 쾨닉 서울]

5월 1일까지 열리는 쾨닉 서울 개관전에서 전시 중인 폴란드 태생의 독일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의 자화상 조각. [사진 쾨닉 서울]

바라캇컨템포러리는 ‘현대미술의 총아’라 불리는 마이클 딘 전시를, 독일 쾨닉(KÖNIG) 갤러리는 최근 서울 청담동 MCM하우스 5층에서 20여 대표 작가들의 작품전을 열었다. 쾨닉 전시장에는 벽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손 조각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던 작품들이 즐비하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영국 작가 리암 길릭 전시도 ‘첨단의 첨단’이다. 알루미늄 파이프로 만든 구조물과 화려한 네온 등이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건물을 해체한 현장에서 나온 듯한 조각들은 한국을 찾은 작가가 2주간의 격리 생활을 마치고 현장에서 직접 배치한 것들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 정원에서 비바람 맞던 작품을 보며 이번 전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제목이 ‘삭제의 정원’인 이유다.

전시를 기획한 이화선 바라캇 이사는 “딘은 영국 뉴캐슬 출신으로 시멘트와 모래, 물 등을 재료로 삼는 작가”라며 “콘크리트는 제철소와 탄광이 많았던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쉽게 접했던 재료다. 시간의 흔적이 있는 콘크리트에서 그는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딘은 “콘크리트는 대중을 위한 도자기”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딘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테이트 브리튼, 헨리 무어 조각 연구소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과 더불어 9점의 신작 조각, 드로잉 등을 공개하고 있다. 이 이사는 “난해해 보이지만 개관 이후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어 우리도 놀랐다. 숨은 팬덤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드로잉은 다 판매됐고 조각품 판매도 기관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새로 문을 연 독일 화랑 쾨닉 갤러리의 개관 전시에도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 다수다. 쾨닉은 2002년 베를린에서 개관해 지난 20년간 급성장해 현재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도쿄 분점을 철수하고 서울로 왔다.

리암 길릭, ‘눈 속의 공장’.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리암 길릭, ‘눈 속의 공장’.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40여 전시작 중 폴란드계 독일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42)의 작품이 눈에 띈다. 보자기를 쓰고 있는 실제 사람 크기의 유령 브론즈 조각부터 바위와 거울을 활용한 설치작품 등  5점이 전시 중이다. 최수연 쾨닉 서울 디렉터는 “쾨닉엔 에빈 브룸, 사라 모리스 등 비엔날레나 뮌스터 페스티벌 등 주요 현대미술제에 초대되는 중요한 작가들이 포진해 있다”면서 “페인팅부터 조각, 드로잉 등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모았다”고 소개했다.

딘과, 크바데, 길릭 등은 현재 세계 미술계를 이끄는 작가들이다. 딘은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를 하며 이를 신체 드로잉, 조각 등으로 옮겨왔다. ‘삭제의 정원’도 그런 맥락이다. 크바데도 공간, 움직임, 시간, 물질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해온 작가로 201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에게 옥상정원에 놓일 조각작품을 주문해 설치했다. 길릭은 이미 영국 현대미술 부흥기를 주도한 세대인 ‘yba’ 작가로 현대미술사의 중요 개념인 ‘관계미학’ 이론 정립에도 공헌했다.

길릭 전시를 열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전승보 관장은 “길릭은 일과 삶 사이의 복잡 미묘한 긴장과 균형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는 작가”라며 “이번 전시가 깊이 있는 미학과 수준 높은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삭제의 정원’은 5월 30일까지, 쾨닉 서울 개관전은 5월 1일까지, 리암 길릭 ‘워크 라이프 이펙트’는 6월 27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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