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주치의] ´충직한´ 장기 사랑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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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진화론의 최정점에 서있지만 여전히 허술한 구석이 많습니다. 인체가 결코 완벽하진 않다는 뜻입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생존에 긴요한 장기일수록 의외로 통증을 느끼는 신경조직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피부에 촘촘히 분포한 통각세포 몇 개만 빼서 주요 장기에 배치해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건강을 잃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신경이 없으니까 탈이 나도 아프지 않은 것이 문제란 뜻이지요.

췌장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해 혈당을 낮춥니다. 음식을 먹게 되면 혈당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이를 방치하면 마치 휘발유가 흘러 넘치는 자동차에 불이 잘 나듯 혈관 곳곳에 염증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당뇨입니다. 췌장은 인체가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 잔뜩 긴장하게 됩니다. 특히 폭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인슐린을 분비해 내느라 중노동에 시달리게 됩니다. 문제는 췌장엔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려줄 신경조직이 없으므로 주인이 이를 눈치챌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요. 주인은 산해진미로 행복하기 그지없지만 뱃속 췌장은 탈진에 빠지게 됩니다.

췌장처럼 티 내지 않고 숨어서 묵묵히 고생을 감수하는 장기로 간이 있습니다. 췌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밥 등 탄수화물이라면 간은 술 등 알코올을 싫어합니다. 주인은 술에 취해 흥겹지만 간은 알코올을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취하느냐 여부보다 마신 알코올의 총량입니다. 취하지 않아도 알코올 총량이 많으면 간에 더 해롭다는 뜻이지요. 만일 여러분의 주량이 하루 소주 한 병이라면 매일 1병씩 3일간 마시면서 취하지 않는 것보다, 첫날 2병을 마시고 취하더라도 나머지 이틀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간에 좋습니다. 알코올 총량은 후자가 적기 때문이지요.

척추도 기억해야 할 부위입니다. 드러눕다시피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할 경우 여러분의 몸은 대단히 편합니다. 비스듬히 앉을 경우 근육의 긴장이 최대한 이완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척추는 비틀어진 모양새로 주인의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엄청나게 용을 써야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척추가 고생하는 사실을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지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몸이 편할 때 음지에서 고생하는 장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건강을 위한다면 몸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들 장기를 배려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행복하지만 췌장을 위해 식사량을 줄이는 배려가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당뇨에 걸리지 않지요.

간을 위해서라면 술자리에서도 가능하면 8잔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에 부담을 주는 알코올은 80g인데 대개 한 잔에 담겨있는 알코올 총량은 독한 술일수록 잔의 크기가 작으므로 주종(酒種)에 상관없이 10g 내외로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단 폭탄주는 예외입니다. 알코올 함량을 따져볼 때 다른 술의 2잔에 해당하므로 간을 위해서라면 폭탄주는 4잔 이내로 마셔야합니다. 앉을 때도 척추를 위해서라면 다소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앉아야 합니다. 몸이 편한 것이 곧 건강은 아닙니다. 오히려 편안할 때 나를 위해 애쓰는 장기는 없는지 살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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