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가 지난달 선보인 ‘올 뉴 카스’는 병 한가운데에 육각형 모양의 온도 센서가 달려있다. 맥주를 마시기 적정한 온도일 때 이 센서는 파란색을 띤다. 하이트진로도 ‘신호등(변온)’ 마크를 달아 적정한 음용 온도를 알려준다.
한국화학연구원은 ‘맥주 신호등’처럼 코로나19 백신의 보관·유통 온도가 적정한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감지장치를 개발했다고 12일 밝혔다.
적정 온도 벗어나면 파란색 색소 번져
국내에서 허가를 받은 코로나19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얀센 등 3종이다. 여기에 모더나 백신이 12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수입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이 4종의 백신 중 아스트라제네카·얀센 백신은 상온 보관이 가능하다.
하지만 화이자·모더나 같은 mRNA백신은 초저온 유통이 필요하다. 유전자 정보를 세포질 안의 리보솜에 전달하는 mRNA가 온도에 취약해서다. 화이자는 –70℃, 모더나는 –20℃에서 보관해야 한다.
극저온 보관·운송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화학연구원은 온도 변화 감지 장치를 개발했다. 백신병 옆에 특정 화합물이 담긴 용기를 붙여 백신의 보관 온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에틸렌글리콜 물질을 활용했다. 자동차 냉각수로 주로 사용하는 에틸렌글리콜은 –69℃에서 고체로 변하는 특성이 있다. 녹는점이 화이자 백신의 적정 유통 온도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연구팀은 이 물질에 파란색 색소를 넣었다. 또 하단에는 파란색 색소가 번지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흰색 펄크가루를 첨가했다.
미국화학회 국제학술지 표지논문 선정
이에 따라 화이자 백신이 상온(20℃)에서 1~2분 이상 노출되면 에틸렌글리콜이 녹아 색소가 번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권장 온도보다 높은 온도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색이 더 많이 번지기 때문에, 코로나 백신이 상온에 어느 정도 노출됐는지 추정할 수도 있다.
같은 원리로 녹는점이 –20℃ 안팎인 수크로오스 화합물을 활용하면 모더나 백신이 적정 온도에서 유통됐는지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상온에 노출되는 상황도 대비할 수 있다. 1~2분 이상 노출됐을 때만 색깔이 번지도록 에틸렌글리콜(40%)과 물(60%)의 비율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도가 –69℃나 –20℃를 초과하더라도 고체가 바로 액체로 변하지 않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 국제학술지(ACS오메가)의 3월호 표지 논문으로 채택됐다.
지금까지는 백신의 보관·운송 과정에서 저온을 유지했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지난해 독감 백신 유통 과정에서 적정 온도 문제가 불거진 것도 배송기사가 상온에서 유통할 경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성약품 "백신배송 마지막 순간, 트럭 기사가 실수···우리 책임"
박제영 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 박사는 “코로나 백신의 초저온 유통 사고는 백신 유통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연구원이 개발한 백신 온도 감지 장치는 일단 액체가 되면 다시 고체로 환원하지 않아 조작이 불가능하다. 백신 유통에 대한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동엽 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 박사는 “이 장치를 상용화할 경우 원하는 백신 크기에 적합한 형태로 제작해 백신병 옆에 꽂을 수 있도록 시제품을 디자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