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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역사의 혈흔, 울음이 ‘선전포고’ 하는 사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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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호 24면

시로 읽는 세상 

419 혁명, 세월호 등 4월의 역사와 눈물. 일러스트=김이랑 kim.yirang@joins.com

419 혁명, 세월호 등 4월의 역사와 눈물. 일러스트=김이랑 kim.yirang@joins.com

『논어』 ‘위령공편’에는 장애인을 대하는 공자의 곡진한 모습이 나온다. 악사 면이라는 이가 공자를 뵈러 와 섬돌에 닿으니, 공자는 “이것은 섬돌이오”라 말한다. 자리 옆에 이르니 “이것은 자리”라 일러 주고, 모두 자리에 앉자 좌중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나중에 제자가 “그것이 시각장애인과 말하는 방식입니까” 물으니, “이것이 본래 시각장애인을 돕는 방식이다”라고 답한다.

이장욱 ‘인파이터-코끼리 군의 엽서’ #‘구름의 링’은 고요한 전장이지만 #현실 선거판은 부박한 막말 잔치 #장승리 ‘하나’ #‘세월호’로 자식 잃은 어머니들 #눈 감지 못하고 자면서도 울어

‘코로나19 브리핑’ 뉴스에 당국자들이 나와 현황, 주의, 당부를 전할 때, 그 곁에는 늘 표정, 손짓, 몸짓으로 말하는 수어사들이 있다. 이들을 볼 때면 『논어』의 저 장면이 떠오른다. 시각장애인을 돕는 공자와 언어장애인을 돕는 수어사가 다른 사람들 같지가 않다. 못 보는 귀에 전하는 입말과 못 듣는 눈에 전하는 수어 또한 그렇다. 하나는 소리로 들려오고 다른 하나는 온몸으로 들려온다. 이 말들은 다 시와 닮았다.

비대면 수업에서 비디오 공유 기능을 켜 놔도 학생들은 얼굴을 보여 주길 꺼린다. 그런데 얼굴을 보이라고 세게 요청하지 못한다. 수십 개가 넘는 사적 공간을 대면하기가 어려워서다. 시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비슷하니, 이건 시 쓰기의 실제 상황 비슷하지 않으냐고 말하기도 한다. 못 보는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학생들의 목소리나 채팅은 정말, 시 같다.

그것은 험로를 넘어 도착한 긴급 연락들 비슷하다. 그들이 내게 시를 들려주는 것 아닌가. 얼굴 없는 목소리들에, 대화창에 뜨는 문장들의 행간과 자간에 무언가가 비쳐 난다. 속기된 대답과 질문들 저편에서 부스럭거리고 꿈틀거리는 움직임들이 있다. 이 멀고 희미한 신호들을 떠올리며, 이장욱의 ‘인파이터-코끼리 군의 엽서’를 학생들과 함께 읽었다. 나누어 인용한다.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불분명하고 가변적인 ‘구름’의 속성은 세계의 바깥과 내면의 심층을 동시에 은유한다. 우리는 그 사이 공간, 즉 생활현실과 의식세계의 거주민으로서 규범과 상식, 이념과 제도의 관할 속에 살아간다.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이란 이 삶에 붙여진 표식과 같다. 화자는 이를 외면하고 모호한 구름과 한사코 싸우려 한다. 구름의 무한성은 그의 싸움을 낯설고 위태로운 것으로 만든다.

그렇기에 구름의 말도 화자의 말도 정확히 중계되지 않는다. 시의 목소리가 예사말과 높임말, 노랫말로 나뉘고 또 합쳐지는 동안, 화자는 엉뚱한 ‘여기’들에 잘못 도착하고서는, 알 수 없는 곳들로 자꾸 가려 한다. 그러나 말 못하는 이의 싸움이 더 격렬하다. 김득구는 백 스텝을 잊은 인파이팅으로 전진했다. 화자는 시의 장애인이 되어 끊임없는 중얼거림으로, 또는 정교한 횡설수설로 접근전을 시도한다.

 (…)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그러나 구름의 아웃복싱은 거대하고 화자의 인파이팅은 조그맣다. 그렇기에 ‘돌아보면 돌처럼 굳’지 않으려는 다짐과 투지를 끌어올려야 한다. 저 비운의 복서는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지만 구름은 여전히 피어나고, 말하고, 들려온다. 구름을 보고 들으려면 혼신의 힘과, 모든 감각의 착란을 동원한 정신적 기투가 필요하다.

구름의 링은 미학적 전위의 격렬하되 고요한 전장이다. 이와 달리, ‘안전한’ 현실은 어지럽고 요란하다. 가령, 없어도 되었을 이 사월의 선거판이 그러했다. 그것은 부박한 막말 잔치이자 진흙탕 싸움이었다. 거기엔 이곳 너머의 기척이 없다. 시는 현행 질서(‘가이사’)의 방해를 뚫고 희미해서 더 분명한 침묵의 수화를 들으려 한다. 장승리의 ‘하나’를 들어 볼까.

 눈동자에서 눈동자로
 새가 가라앉는다
 출렁이는 하늘 아래
 울다가 잠이 깬 여인들
 날개가 물로 흐르는 곳에서
 슬픔은 위임이다
 얼룩이 창문을 닦는다
 아홉 손가락이 젖는다

젖은 눈길에 비친 ‘새’는 넋의 비유여서, 자식 잃은 어머니일 ‘여인들’은 자면서도 운다. ‘물=바다’는 재난의 장소다. 눈 감지도 뜨지도 못하는 그 울음에 닿기 어려워 화자의 슬픔은 ‘위임’에 그치는 걸까. 그럴 수 없기에 오히려 이 눈물은 닦을수록 짙어지는 창의 얼룩이 되고, 잃은 손가락 ‘하나’를 앓는 인간의 숨죽인 고통을, 남은 손가락들의 진저리로 유리에 그린다. 화자는 귀 기울여 먼 곳의 울음을 적어 읽는 이들의 귀에 힘껏 전해 주려 한다.

사월은 찬연한 꽃 시절인데, 곳곳에 역사의 혈흔이 묻어 있다. 가장 가까운 어떤 사월에 대해서도 무슨 말을 꺼내면 불평을 사곤 한다. 그러나 거기 귀를 팔 만큼 시는 한가롭지 않다. ‘구름’과 ‘울음’의 ‘선전포고’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걸 받아 적느라 시는 바쁘다. ‘세월호’는 유령선이 아니다. 유령선이 있다면 육지에 있다. 우리가 그것을 타고 표류하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교수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서정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계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서정성과 불온함이 공존하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집 『끝없는 사람』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등을 냈다.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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