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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표 증세 애플까지 겨냥…"다국적 기업 미국서 세금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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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7일(현지시간) 다국적 기업을 겨냥한 증세 계획을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7일(현지시간) 다국적 기업을 겨냥한 증세 계획을 발표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다국적 기업을 겨냥한 증세안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표한 인프라 투자 방안에 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증세 계획을 통해 15년간 2조 5000억 달러(약 2792조원)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세 회피처 차단, 15년간 2792조원 #'Made In America Tax Plan' 명명

7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미 재무부는 크게 ▶법인세율 21%에서 28%로 인상 ▶다국적기업의 ‘조세 피난’ 규제 ▶미국 기업의 해외 수익에 대한 과세 강화 ▶화석 연료 보조금 폐지 ▶대기업에 대해 최저한세 15% 도입 등을 골자로 한 19쪽 분량의 증세안을 발표했다.

이번 증세안이 그대로 실현될 경우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NYT는 "애플과 같은 다국적 기업은 서류상 소득을 해외로 이전하며 세금을 회피해왔다"며 "이번 미 재무부의 증세 계획은 이런 세금 회피를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논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기업들은 조세 회피처에 해당하는 케이맨 제도나 버뮤다 같은 곳에 소득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7일(현지시간) 미 행정부가 공개한 증세 계획이 원안대로 실현될 경우 애플 등 다국적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미 행정부가 공개한 증세 계획이 원안대로 실현될 경우 애플 등 다국적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지난 2017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희(ICIJ)가 공개한 조세회피 기록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따르면 애플은 미국 로펌 베이커 매켄지를 통해 버뮤다, 케이맨 제도, 버진 아일랜드, 저지 섬 등의 세법을 분석하고 이를 활용해 납세액을 최대한 줄여왔다. 다만 애플은 이에 대해 해외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해 수십억 달러의 세금을 미국에 납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NYT도 지난 2일 포춘 500대 기업 중 나이키와 페덱스 등 미국 26개 기업이 지난 3년간 미국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작년에 한해선 최소 55개의 미국 기업이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고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법인세를 21%로 낮춘 데다 기업을 위한 각종 세금 감면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의 기업을 인수·합병(M&A)한 뒤 본사를 옮겨 세금을 회피하는 이른바 ‘인버전(inversion)’ 전략을 활용해왔다. NYT에 따르면 미 현행법상 미국 내 자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을 ‘지식재산권’ 사용 등의 명분으로 외국 본사에 지불하면,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미 재무부는 앞으로 이런 공제 혜택을 허용하지 않을 예정이다.

또 미국 기업이 해외 자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무형자산소득(GILTI)에 대한 실효세율도 10.5%에서 21%로 인상한다. GILTI 과세는 미국 기업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지적재산권을 저세율 국가에 있는 자회사로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입한 제도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의 재무부는 미국 법인들이 이 제도 하에서도 미국에서 얻은 이익을 해외 자회사 수익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GILTI 세율을 인상하고 동시에 과세를 해외 자회사가 소재한 국가별로 계산할 방침이다.

미 재무부는 다국적 기업에 대한 이같은 증세를 통해 10년 동안 약 7000억 달러(약 781조원)가 마련될 것으로 추산했다.

최저한세와 관련해선 회계상 수익이 20억 달러(약 2조 2340억원) 이상인 기업을 상대로 도입한다. NYT에 따르면 상당수 미국 대기업은 여러 공제 등을 활용해 현 법인세인 21%보다 훨씬 적게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막기 위함이다. 미 재무부는 회계상 수익에 대해 15% 최저세율을 적용할 예정인데, “최저한세는 가장 적극적으로 조세를 회피하는 기업에 세금을 부담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세 기준이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언했던 수익 1억 달러(약 1120억원) 이상에서 20억 달러로 높아졌다”며 “약 45개 기업이 이 기준에 해당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증세 계획을 두고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NYT에 따르면 미 상공회의소는 “이 계획은 미국 기업에 피해를 주고 세계 경제에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며, 미국 내 일자리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워싱턴 기업의 최고경영자 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도 “바이든의 글로벌 최저 법인세는 미국에 막대한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국가가 법인세 세율을 더 낮추거나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법인세율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앞서 5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지난 30년간 이어진 법인세 바닥 경쟁을 멈춰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을 제안했다. [AP=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을 제안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증세 계획안이 원안대로 시행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법인세율 인상 등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공화당은 증세에 반대하고 있으며 민주당 일부 상원의원도 법인세율 인상을 25%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토론을 환영한다. 타협은 불가피하다”며 논의의 여지를 남겼다.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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