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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게임 채팅창에 보인 택배사진 1장…악마가 움직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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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 피의자 김태현(25)의 치밀하면서도 엽기적인 행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년 전에는 여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여성을 훔쳐보다 적발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고, 지난달 10일엔 여고생에게 음란한 메시지를 전송한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5일 경찰은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김태현(25)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서울경찰청 제공

5일 경찰은 서울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김태현(25)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서울경찰청 제공

온라인게임에서 피해자 알게 돼

경찰 등에 따르면 김태현은 고교 졸업 후 별다른 직업 없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오다 피해자 A씨(25)를 지난해 12월 처음 만났다고 한다. 여러 이용자가 팀을 이뤄 협업하는 한 온라인게임의 대면 모임에서였다. 김태현은 A씨가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스토킹을 했다. 피해자는 김태현의 연락을 차단하고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스토킹은 더 집요해졌다.

김태현은 A씨가 채팅창에서 실수로 노출한 택배 상자 사진을 보고 집 주소를 파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월 24일에 김태현은 A씨의 거주지인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 직접 찾아갔다. A씨는 지인들에게 김태현의 스토킹을 두려워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퀵서비스 위장 침입, 6시간 동안 3차례 살인

 김태현이 범행을 저질렀던 노원구의 한 아파트 현관문 앞. 지난 5일 오후 3시에는 한 시민이 붙여 놓은 편지와 국화꽃이 놓여있었다. 편광현 기자

김태현이 범행을 저질렀던 노원구의 한 아파트 현관문 앞. 지난 5일 오후 3시에는 한 시민이 붙여 놓은 편지와 국화꽃이 놓여있었다. 편광현 기자

김태현의 스토킹은 극악무도한 범죄로 귀결됐다. 지난달 23일 A씨의 거주지를 다시 찾아간 그는 오후 5시쯤 A씨가 자주 찾던 동네  PC방에 먼저 들렀다. 컴퓨터를 켜지 않은 채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목격됐다. A씨가 PC방에 오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흰색 가방을 메고 뭔가가 들어 있는 봉지를 들고 마스크를 쓴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20분쯤 뒤 A씨의 집으로 향한 그는 살인마로 돌변했다.

오후 5시 30분쯤 김태현은 당시 집 안에 있던 A씨의 여동생에게 자신을 ‘퀵서비스 기사’라고 소개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이 열려 집 안으로 들어간 김태현은 준비한 흉기로 여동생의 목 부위를 찔러 살해했다. 이어 오후 10시 30분쯤에 귀가한 A씨의 어머니도 같은 수법으로 살해했다. 한 시간 뒤에 집에 도착한 A씨도 그렇게 희생됐다. 지난 5일 김태현의 신상 공개가 결정된 사유에는 계획적이고 치밀한 범죄 준비 사실이 고려됐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히 급소를 공격해 '업자'의 범행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김태현은 범행 현장을 벗어나지 않은 채 사흘간 사건 현장에 머물렀다. 흉기로 자신의 목 부위에 자해를 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갈증을 느껴 냉장고에서 물과 맥주 등을 꺼내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신상 공개 후 첫 발언, “반성하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가람 기자

지난 25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가람 기자

김태현이 경찰에 발견된 건 지난달 25일 오후 9시쯤이었다. A씨와 연락이 안 된다는 지인의 신고가 있었다.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숨진 세 모녀와 김태현을 발견했다. 자해로 다친 김태현은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느라 첫 피의자 조사는 8일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이뤄졌다.

지난 2일 병원에서 퇴원한 김태현은 사전에 발부된 체포영장이 집행돼 서울 노원경찰서로 압송됐다. 경찰 조사에서 김태현은 A씨가 만남과 연락을 거부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지난 4일에 서울북부지법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태현의 국선변호인은 영장 심사를 마친 뒤 “본인도 살인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이 4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노원 세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이 4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신상이 공개된 지난 5일 김태현은 취재진 앞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오후 9시쯤 노원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피해자 유족에게 할 말이 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말 반성하고 있다”고 한 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서울 도봉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된 김태현은 9일 검찰로 송치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6일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범죄 심리를 분석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사이코패스 검사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가람·편광현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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