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도전, 또 하나의 기회

중앙일보

입력

사실 의사들의 삶은 고달프다. 의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의료기술에 뒤쳐지지 않기 위하여 환자나 병원의 동료 의사들 뿐 아니라 요사이는 대중매체에 의해서도 끊임없는 도전을 받는다. 그것의 대표적인 주자가 근거중심의학(EBM, evidence-based medicine)이
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북미에서의 나의 경험을 한국에 있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먼저 논의를 전개하기 전에 약간은 생소하게 느껴질 근거중심의학에 대해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캐나다의 새킷(David Sackett) 교수 등에 의해 주도되어진 근거중심의학은 이후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서 워크샵을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20여년의 의학 교육을 뒤돌아 볼 때 근거중심의학은 가장 혁신적인 것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후 미국 의학교육협회는 의과대학생들의 교육에 근거중심의학의 원리를 통합할 것을 주장하고 각 대학 내 교과과정 속에 이를 필수과목으로 포함시켰다. 근거중심의학의 원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환자를 진료하는데 문헌을 통해 가장 최근의 근거를 조사하고, 이를 적극 활용함으로 의료기술의 변화와 발전을 현재 진료에 함께 실현해 나가는 합리적인 방법과 도구라고 설명함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최근 근거중심의학은 소집단이나 팀 교육을 통해 의학 교육 뿐 아니라 환자 교육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 중 소집단 토론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는 전통적 학습방법과는 다르다. 기존의 교육이 단지 현재의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면 근거중심의학은 현재 자신이 처한 문제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고열이 심한 환자가 있다면 이 환자의 고열을 치료하기 위해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떤 치료가 가장 적정한지, 또 질병의 경과는 어떨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시나리오에 기초한 임상 질문을 만든다. 이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문헌을 검색하고 비평적 시각으로 함께 토론하고 각종 과학적인 통계 방법들을 동원하여 환자에게 가장 최선의 진료가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은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자격시험을 통해 훈련의 강도를 강화하기도 한다. 근거중심의학을 가르친 지난 10여년의 경험을 통해 보면, 문헌을 찾고 번역하여 실무에 새로운 의학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수많은 도전이었다. 나는 근거중심의학을 적용함에 따라 때론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통념들이 수정되어야 함을 발견하곤 한다. 환자를 그냥 적당히 치료하고자 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최근 의사들은 문헌에 제시된 근거를 환자 진료에 직접 사용하고 보다 나아진 그 결과를 증명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사들은 보건의료체계 내에서의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근거중심의학의 주된 초점은 무엇보다 환자의 안녕이다. 그 동안 수많은 발전이 이루어졌고 새로운 정보나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환자를 괴롭게 하는 일이 수반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환자 개인의 가치와 선호를 발견하고 이를 진료의 과정에 반영하여 환자와 함께 의사결정을 진행함은 근거중심의학의 복잡한 과정을 배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근거중심의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환자중심의 모든 후속 연구와 교육적 혁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간 진료나 의학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근거중심의학은 불확실한 나의 생각을 확고한 의지로, 환자를 위해 나의 최선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길잡이였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도 나에게 끝없는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는 존재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제 오는 9월 13일이면 한국에서 이러한 나의 신념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려온다.

저자소개

아미트 K. 고쉬 박사는 미국 메이오클리닉 의과대학의 일반내과 부교수이며, 일반내과 전문의 협의회 부서장이다. 그는 인도 간디가르대학교와 미국 미네폴리스에 있는 미네소타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일반내과 전공의 과정을 마쳤으며, 이후 신장내과와 고혈압 전문의 과정을 이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근거중심의학에 의한 교수법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임상실무에서 근거중심의학의 적용 한계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를 규명하는 것이며, 환자-의사간 의사소통의 장애요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또한 메이오크리닉 의과대학에서 2000년부터 4년간 최상위 20% 이내의 교수로 평가받고 있으며, 2005년에는 우수교육자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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