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하경 칼럼

착한 대통령 임기 말에 벌어지는 해괴한 일들

중앙일보

입력 2021.04.0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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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했다.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24%에서 20%로 인하하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한 발언이다. 빈자(貧者)를 향한 ‘선한 의도’가 담겼다. 그러나 “시장 원리도 모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임세은 청와대 부대변인은 “금융의 생태적인 구조를 모순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권력의 도덕적 해이 심각한 수준
이대로 가면 대통령 몰락할 것
기득권 된 진보의 일탈 시정해야
경세제민 향한 노력 기억할 것

대통령의 ‘선의’와 차가운 ‘현실’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금융위원회는 “20%를 넘는 금리로 대출받는 208만 명의 이자 부담이 매년 4830억원 경감될 것”이라고 했다. 대신 3만9000명 정도가 ‘금융 난민’이 돼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6000여 개 대부업체 상당수가 경영난을 겪고, ‘금융 난민’ 60만 명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시(微視)경제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마셜은 1885년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취임 첫 강의에서 “경제학자는 냉철한 머리(cool head)와 따뜻한 가슴(warm heart)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영국 빈민의 참상을 목도한 마셜의 결론이었다. 그는 함수와 그래프로 수요·공급과 가격의 관계를, 미적분으로 한계효용을 최초로 규명한 수리경제학자였다. 그가 “세상을 잘 다스려 빈자를 구제한다”는 경제학(Economics)의 동양적 정의(定義)인 경세제민(經世濟民)과 만난 것은 ‘따뜻한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선의는 마셜의 ‘따뜻한 가슴’과 통한다. 현실을 오차 없이 파악하고 접근했을 때 실현된다. 그런데 정부는 현실 진단에 실패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부동산 정책이다. 인간의 꿈틀거리는 욕망이 살아 숨쉬는 시장을 향해 공중투하한 24번의 규제 폭탄은 ‘벼락 거지’를 양산(量産)했다. 그러고도 지난해 “문 정부 들어 집값은 11%가 올랐다”(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며 엉터리 통계를 꺼냈다. 무능했다. 여기에 ‘LH 사태’까지 터지면서 부패가 죄목에 추가됐고, 민심은 정권을 떠났다.

청와대에는 민심을 파악하고 권력 실세의 전횡을 감시하는 사정(司正) 기능이 있다. 박정희 정권 때 탄생했다. 1970년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춘천 유세 현장에 갔던 ‘직보라인’ 이건개 서울시경국장이 경쟁자이기도 한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후보가 정권의 부정부패를 공격했는데, 이를 점검하는 사정실을 만들자고 건의했다. 대통령은 즉시 채택했다. 이건개는 “청와대 사정 기능은 건국 이후 최고의 연설가 김대중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박정희는 직보라인에게 “내가 잘한다는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듣고 있다. 내 잘못과 정부의 잘못, 내 주변 핵심 권력 참모들이 잘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수시로 얘기해 달라”고 했다. 이토록 냉철한 박정희도 임기 말에는 부하인 차지철 경호실장이 민심을 차단하는 바람에 부마사태의 심각성도 모른 채 10·26 사태를 맞았다(『불멸의 본질, 위대한 국가의 길』).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통령과 친족, 핵심 참모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특별감찰관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동생 박근령 사기사건과 우병우 스캔들을 조사한 직후 내쳤다. 몰락의 시발점이었다. 문 정권에서는 임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임명절차를 진행하고 기능을 회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는 허언(虛言)이 됐다.

문 대통령 임기 말에 해괴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집값은 치솟고,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는 세계 111위(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타 1일 발표)로 주저앉았다. 마땅히 부동산과 방역 대책에 올인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권력으로 향하는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검찰수사권을 박탈하려다 윤석열 총장 사퇴를 초래했다. 정권 실세들은 대법원에서 뇌물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 구명에 정신이 없다.

설훈 민주당 의원 등 범여권 의원 73명은 “민주화 유공자 배우자와 자녀의 교육·취업 등을 지원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특혜 세습”이라는 거센 항의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거처할 1800평 사저를 마련하려고 농지를 형질변경했고,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포함한 실세들은 부동산 거래로 사익을 취하다 들통났다.

권력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 수준이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은 불가역적 몰락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칭송했던 민주당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조차도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은 갈수록 고립될 것이다.

진보정권 들어 사회적 약자의 삶은 악화됐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기득권이 된 진보의 오만을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의 균형에 도달하게 된다. 선의를 지키면서 경세제민을 위해 노력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이하경 주필·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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