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구슬 속에서 피는 '치료용 식물'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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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유리병 속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관상용 식물, 빨강.노랑.파랑.보라 등 색색의 구슬 틈으로 뿌리를 내린 원예치료용 식물….

지난해 말 유리병 속 '팬시 식물'로 인기몰이를 한 데 이어 올해 초 국내 처음으로 원예치료용 식물을 내놓은 농업 벤처 프랜토피아(경남 진주시 진성면 상촌리)의 서은정(40) 대표. 그가 경남도 농업기술원과 함께 개발한 100여 종이 이달 초부터 한국원예치료협회의 협력병원인 진주 반도병원에 납품돼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원예치료란 환자 곁에 식물을 놓아두어 심리적 안정효과 등을 꾀하는 것이다.

서씨는 영양액을 머금은 젤리 형태의 구슬을 유리 화분에 담고, 그 속에 흙 없이도 잘 자라며 벌레.곰팡이가 없는 식물(신고니움.산데리아 등 수생 식물이 주종)을 심어놓은 제품을 고안해 냈다. "환자 치료용 화분에 온갖 세균이 득실거리는 흙을 사용하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해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경상대 원예학과를 졸업한 서씨는 1993년 어머니의 논 200평을 빌려 회사를 차렸다. 초기엔 거베라.국화 등 주로 시설화훼 모종을 조직배양 기법으로 생산했다. 전국의 대학과 농업기술센터를 찾아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농민들 사이에서 서씨가 생산한 모종이 병충해에 강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사실 대학 시절부터 조직배양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식물 조직배양은 섬세한 여성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인데다 사업성도 있다고 판단해 뛰어들었죠." 하지만 창업 당시 28세인 처녀 사장을 무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마음 고생도 많이 했다고 한다.

모종 판매로 기반을 잡은 서씨는 그간의 수익금과 정부 보조금을 투자해 조직배양실.육묘장.작업장 등 1700여 평의 생산 시설을 구축했다. 이 곳에서 20여 명의 직원이 각종 화훼 종묘를 연간 200만 주나 생산한다.

지난해 춘란.풍란 등을 유리병 속에서 키워 상품화한 '팬시 식물'이 젊은 연인들 사이에 선물용으로 불티 나게 팔리며 연간 매출도 5억원대로 뛰었다.

서씨는 "최근 코스타리카의 종묘회사와 팬시 식물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조직배양으로 산삼과 인삼을 기른 뒤 사포닌만 뽑아내 제약회사에 공급하는 사업도 추진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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