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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배의 시사음식

눈물의 미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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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정배 음식평론가

박정배 음식평론가

영화 ‘미나리’(MINARI)가 훈풍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25일 열릴 올 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변방인 아칸소의 작은 마을에서 고추나 무 같은 야채를 키우는 영화 속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에게 미나리는 판매할 작물이 아니었다. 장모(윤여정)가 한국에서 가져온, 농장 주변의 작은 개울에 심은 ‘어디서든 잘 자라는 원더풀 미나리’는 잡초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화재로 농장 창고가 무너져내린 후 제이콥과 아들 데이비드(앨런 김)는 “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찾으셨어”라고 하며 미나리를 뜯는다.

미국 시골에서도 ‘알아서 잘 자라는’ 미나리는 소박하고 여리지만 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 유배 초기 몇 년간의 강진읍성 생활을 마치고 숲속에 다산초당을 짓고 안착한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다산은 물을 막고 ‘사랑 아래다 새로이 조세 없는 밭을 일궈, 층층이 자갈을 쌓고 샘물을 가두었지. 금년에야 처음으로 미나리 심는 법을 배워, 성안에 가 채소 사는 돈이 들지 않는다네. 농어국에 전복회에 이것저것 그득하며, 파 익히고 미나리 데치고 모두가 제격이었네’라고 읊었다.

[사진 박정배]

[사진 박정배]

한국에서 캘리포니아로, 다시 미국 남부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는 ‘미나리’의 가족과 한성에서 강진읍성으로, 다시 산속의 작은 초당에 안주하고 미나리를 기르는 다산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중국에서도 고대부터 먹어온 미나리는 농민의 음식이었다. 미나리를 맛있게 먹은 농부가 부자에게 미나리를 선물했다가 혼이 나는 것과 송나라 농부가 따뜻한 봄 햇볕을 쪼이며 아내에게 임금께 바치면 반드시 상을 받을 것이라는 고사를 근폭(芹曝)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미나리 사랑도 꽤 오래됐다.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1430~1502)은 ‘조선부(朝鮮賦)’에서 ‘왕도와 개성 사람들은 모두 집의 작은 못에 미나리를 심는다’고 했다.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은 근전(芹田·미나리밭)을 운영했다. 이민구(李敏求·1589~1670)는 새해에는 ‘진흙 속 미나리와 들의 쑥에도 다 생기 돌고’ ‘미나리 진흙을 봄 제비가 물어 간다’고 노래했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주방의 여덟 가지 야채를 노래함’(廚蔬八詠)에서 ‘미나리는 예로부터 좋은 나물이라(芹子由來美) 아침 밥상에 국거리도 좋고 말고(晨盤亦可羹)’라고 찬미했다.

미(물)나리(나물)는 물이나 나물처럼 흔하지만 차가운 물에서도 얼음 밑에서도 자란다. ‘어름이 꽝꽝 언 논 속에서도 새파랗게 새싹이 난 미나리는 서울의 맛이었다.’ (1929년 9월 27일자 대중잡지 ‘별건곤’) 봄 땅의 흙내음과 시냇물의 은근하고 할머니 손처럼 포근한 향을 지닌 미나리는 가난한 시절 우리를 살찌운 (눈)물의 식재료였다.

박정배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