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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짜증 늘어” 63%···엄마는 ‘나홀로 시간’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정유미 분)이 육아를 하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정유미 분)이 육아를 하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초등 5학년·2학년생을 둔 주부 강모(42)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해 생활이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아침·점심·저녁 세 끼를 챙기는 것은 물론 학교에 못 가는 날은 원격수업도 함께 본다. 종일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바깥 볼일은 엄두도 못 낸다.

코로나19 시대 자녀돌봄과 부모의 정신건강

청소·빨래 같은 집안일은 물론 더 늘었다. 최근에는 아랫집에서 층간소음 문제를 제기해 아이들에게 아예 “앉아서 생활해라”고 입버릇처럼 외친다. 회사원인 남편이 장보기를 해주지만 돌봄은 아무래도 강씨 몫이다. 강씨는 “남편도 밖에서 힘들지만, 심할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숨이 막힌다”고 우울감을 토로했다. 아이들 교육과 정서도 걱정이다. 최근 개학과 함께 둘째가 주 5일 등교를 시작했지만 확진자가 500명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강씨의 ‘코로나 블루’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단계 올라갈 때마다 숨 막혀”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가 '코로나19 시대의 자녀돌봄과 부모의 정신건강 위기'에 대해 조사한 결과. [자료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가 '코로나19 시대의 자녀돌봄과 부모의 정신건강 위기'에 대해 조사한 결과. [자료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가 지난달 발표한 ‘코로나19 시대의 자녀돌봄과 부모의 정신건강 위기’는 강씨처럼 팬데믹 시대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의 정신건강 문제를 잘 보여준다. 센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자녀돌봄 상황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6월 12일~7월 6일 13세 미만의 자녀를 한 명 이상 둔 남성·여성 1252명을 조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보다 하루 평균 자녀돌봄 시간과 가사노동 시간이 각각 2.6시간, 1시간 늘었다. 증가한 시간이 남성(자녀돌봄 0.7시간, 가사노동 0.4시간)의 3배 이상이다.

이런 현상은 맞벌이 가구보다 남성 외벌이 가구에서 두드러졌다. 맞벌이 가구 여성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자녀돌봄 시간이 1시간 50분 정도 늘었지만 전업주부는 3시간 40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시대 전업주부의 하루 평균 자녀돌봄 시간은 12시간 40분에 달했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가 '코로나19 시대의 자녀돌봄과 부모의 정신건강 위기'에 대해 조사한 결과. [자료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가 '코로나19 시대의 자녀돌봄과 부모의 정신건강 위기'에 대해 조사한 결과. [자료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자녀돌봄에 대한 경험도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여성의 63.6%는 ‘자녀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코로나19 이전보다 늘었다’고 답했다. 남성 역시 46.4%가 이런 경험이 있다고 답해 많은 부모가 코로나19 시대 자녀돌봄에서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우 그렇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은 19%로 남성(7.8%)의 2배 이상이었다.

여성 자녀돌봄·가사 3.6시간 늘어

‘자녀와 떨어져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여성은 28.3%, 남성은 9.9%였다. 여성의 64.9%가 ’나홀로 시간’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자녀돌봄으로 평소보다 우울하다는 여성은 53.1%(남성 36.6%), 고립감을 경험한 여성은 51.3%(남성 37.8%), 평소보다 피로하다는 여성은 76.7%(남성 62.8%),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여성은 70.2%(남성 53.5%)로 많은 여성이 늘어난 가정양육에 심리상태 변화와 스트레스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가 '코로나19 시대의 자녀돌봄과 부모의 정신건강 위기'에 대해 조사한 결과. [자료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가 '코로나19 시대의 자녀돌봄과 부모의 정신건강 위기'에 대해 조사한 결과. [자료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이 연구를 진행한 강은혜 서울대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 연구원 역시 7살·2살 자녀를 둔 부모다. 강 연구원은 “맞벌이라 아이를 유치원 긴급돌봄에 맡길 때는 전염병이 도는 상황에서 쉽지 않았다”며 “150명 넘는 정원에서 신발장에 운동화가 5켤레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많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아침엔 아이가 예쁘다가 가사에 지쳐 점심이 되면 벌써 아이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며 “아이에게 굉장히 미안하고 내 문제인가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화상회의 시간을 새벽으로 옮기는 등 업무와 돌봄·가사를 병행하며 5시간 이상 못 자고 여러 부담에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유치원에 신발 5켤레뿐, 많이 울어”

강 연구원은 “휴원·휴교 등으로 아이들을 집에서 보는 것은 부모 중에서도 여성이라는 시선이 아직 강하다”고 했다. 그는 “종일 집에서 어린 자녀와 씨름하는 부모들은 스트레스가 많지만 특정 직업군으로 분류되지 않아 정신건강 관리 요주의 집단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며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가족돌봄휴가 제도가 있지만 사회적 분위기나 기업 여건상 실제로 이용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평일 낮 시간대 상담 요청이 어려운 부모를 위한 상담서비스 구축, 국가트라우마센터 등 정부 상담서비스에 대한 적극적 홍보,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다양화, 돌봄서비스의 질적 향상 등을 대응책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재택근무제·유연근무제 같은 제도를 부모가 의무적으로 이용하게 해 여성에게 가중된 돌봄을 분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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