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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 복제 통해 군체성장해 진화 안돼…집단이기 땐 퇴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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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22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산호 일러스트

산호 일러스트

열대 바다에 사는 산호는 꼭 나무처럼 생겼다. 그래서 식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동물이다. 정말일까 싶다면 밤에 산호를 보면 된다. 돌컵 같은 단단한 갑옷 안에 숨겨두었던 촉수를 뻗어 지나가는 플랑크톤을 사냥하고 편을 갈라 격렬한 집단 전투까지 벌이니 말이다.

꿀벌·개미 여왕 중심 협력·번성 #사자·늑대는 대장 통치로 진화 #인간도 능력자를 리더 삼지만 #기득권 강화하다 위기 맞기도 #LH 사태, 특권층 실태 보여줘

이들의 전투는 꽤 볼 만한데 대부분 ‘내 편’과 ‘네 편’의 싸움이다. 각 편들은 모두 유전자가 같다. 하나의 산호가 몸을 둘로 나누거나 몸에서 눈을 내 분리하는 식으로 자신을 복제해 편을 늘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1년에 한 번 수정해 유생을 거쳐 폴립(polyp)이라는 성체가 되는데, 이때부터는 복제를 통해 성장한다. 돌컵 같은 갑옷을 입어 개체가 성장할 수 없기에 숫자를 늘리는 식으로 군체(群體) 성장을 하는 것이다. 고생대라는 저 먼 원시시대부터 사용해온 전략이다.

자연에는 이와 비슷한 집단 성장 전략을 가진 생명체들이 꽤 된다. 잘만 하면 좀 더 용이하게 번성을 이룰 수 있는 까닭이다. 꿀벌과 개미들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산호보다 한걸음 진화한 전략으로 번성의 기반을 마련했다. 여왕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여왕은 왕국을 시작하기도 하고 계승하기도 하지만 통치하지는 않는다. 임무는 하나, 알을 많이 낳아 집단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여왕은 매일 수천 개씩 알을 낳는 일에 전념하고 운영은 일벌과 일개미들이 하는 역할 분담형 신분제 사회다. 여왕벌의 경우 능력이 쇠퇴한다 싶으면 ‘보필’하는 이들이 알아서 새로운 여왕을 옹립한다. 때마침 태어나는 새끼들 중 하나에게 로열 젤리를 먹여서 말이다.

가장 최근에 출현한 포유류 중에는 이들보다 좀 더 역동적인 전략으로 시대의 주인공이 된 집단들이 많다. 이들 또한 ‘대장’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집단을 이루는데 꿀벌이나 개미들과 달리 대장이 통치까지 한다. 덩치가 커서 민첩한 대응이 중요하기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리더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집단을 유지,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대장 자리는 종신이 아니다. 대체로 가장 강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존재 만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능력제다. 침팬지와 사자, 늑대들은 근육에서 나오는 힘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같은 무기로, 코끼리는 경험 많은 지혜로 말이다. 능력이 없다 싶으면 도전자가 나타나 그 자리를 대체한다. 대장이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막장’ 같지만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간은 어떨까? 인간 역시 포유류라 능력자를 리더로 삼아 집단을 성장시킨다. 그런데 성공을 이루면 대개 방식을 바꾸는 경향이 있다. 다른 포유동물 집단들은 성공해도 능력 우선 방식을 고수하는데 인간은 슬며시 신분제로 전환한다. 최고 리더가 자신의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일부에게 특권을 주고, 그 일부 특권층도 자신들의 안정을 위해 또 다른 일부에게 특권을 주는 연쇄작용을 통해서 말이다. 전체를 위한 질서와 안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득권 강화다.

이런 신분제는 당연히 능력보다 ‘출신’을 우대한다. 아니 출신이 능력이 된다. 전체의 능력을 쓰지 않고 소수의 능력만 쓰니 전체의 힘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오래가지 못한다. 진화가 아니라 퇴행인 것이다. 특히 이런 조직이나 집단은 앞에서 말한 산호들이 하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자기들만의 성장을 꾀하는 탓에 스스로를 내리막길로 몰기도 한다.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혈족)이나 자기 생각과 맞는 사람 만을 ‘우리 편’으로 삼고, 복종과 순응으로 세를 늘리는 ‘복제’ 전략이 그것이다.

이 방식을 원시적이라고 한 건 심각한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수정 과정이 없어 쉽게 세를 불릴 수 있지만 모두 같은 유전자라 약점도 같아서, 예를 들어 한 병원균에 뚫리면 집단 모두가 ‘한방에 훅’ 간다. 인간 집단도 마찬가지여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위기가 닥치면 쉽게 붕괴된다.

수많은 역사가 이런 한계를 보여주었는데 왜 이런 현상이 계속될까? 개인의 성장을 우선하려는 이기적 유전자의 충동이 그만큼 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는 좋을 일이 없다.

많은 문명을 탐사한 후 『역사의 연구』를 쓴 아놀드 토인비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고대 그리스인들은 천부적 재능을 자신을 위해서만 쓰는 사람을 ‘이디오테스(Idiotes)’라고 불렀다. 이 말은 현재 Idiot라는 영어로 남아있는데 ‘바보, 멍청이’라는 뜻이다.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이들이 미래를 해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토인비는 더 나아가 “문명의 쇠퇴는 외부의 타격이 아니라 내부의 자기 결정 능력 상실 때문”이라고 했다. 외부의 침입보다 스스로 성장하는 능력을 잃어서 무너진다는 의미다.

요즘 LH사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여러 일들은 우리의 기득권층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지금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퇴행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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