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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 꽃 아찔한 향기, 중매쟁이 박쥐 홀리는 번식 전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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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호 18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두리안의 꽃. 덥고 습한 열대우림에서 강렬한 향기로 수분 매개체인 왕박쥐를 부른다. [위키미디어·중앙포토]

두리안의 꽃. 덥고 습한 열대우림에서 강렬한 향기로 수분 매개체인 왕박쥐를 부른다. [위키미디어·중앙포토]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하지만 꽃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매혹적인 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꽃도 많다. 그저 그런 꽃도 있고, 심지어 이게 꽃인가 싶은 경우도 있다. 도대체 이 아름답지 않은 꽃은 뭘까? 꽃의 존재 이유는 아름다움이 아니던가?

밤에 활동 나방 부르는 달맞이꽃 #수수한 색깔로도 멸종 않고 번성 #꽃이 모두 아름다울 필요없듯 #고객 필요에 맞춘 서비스가 중요 #MRI 촬영실 해적선처럼 바꾸자 #검사 전 진정제 맞는 아이 확 줄어

참나무 숲 근처나 버드나무가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5~6월엔 세차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해 봤자 금방 뿌연 꽃가루로 뒤범벅이 되기 때문이다. 꽃이 얼마나 크길래 꽃가루가 이렇게 많을까 싶지만 막상 보면 실망하기 딱 좋다. 아주 작고 볼품없는 까닭이다. 매화나 벚꽃, 진달래 같은 꽃과 비교하면 꽃 같지도 않을 정도다. 덩치(나무)는 커다란데 꽃은 왜 이렇게 좀스러울까?

사진은 열대 과일 두리안. [위키미디어·중앙포토]

사진은 열대 과일 두리안. [위키미디어·중앙포토]

알다시피 꽃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짝짓기를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벌과 나비 같은 중매쟁이를 불러 모으기 위해 핀다. ‘여기 맛있는 꿀이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하는 화려한 간판이 꽃이다. 조금이라도 더 눈에 잘 띄어야 고객인 중매쟁이가 쉽게 올 터이니 최대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다.

하지만 참나무나 버드나무는 벌과 나비가 아니라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를 날린다. 그래서 풍매화(風媒花)라고 하는데,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대체로 모여 사는 편인데 이런 삶의 형태에서는 굳이 애써서 꽃과 꿀을 만들기보다 바람을 이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다들 가까이 있으니 약간의 바람만 있어도 쉽게 짝짓기할 수 있어서다. 꽃가루를 작고 가볍게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꽃 또한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으니 클 필요가 없고 꾸밀 이유도 없다. 꽃과 꿀을 만들 에너지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꽃가루를 만들어 뿌리는 게 낫다. 주변을 온통 뿌옇게 만드는 게 사실은 전략인 것이다.

양을 중시하는 이들과 달리 벌과 나비에게 도움을 받는 충매화(蟲媒花)는 질로 승부한다. 숫자는 적지만 상대적으로 큰 꽃가루를 만들고, 고객이 오지 않을 수 없도록 화려한 간판(꽃)과 달콤한 선물(꿀)을 준비한다. 마치 백화점 직원들이 고객을 위해 활짝 웃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잠깐, 여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달맞이꽃도 충매화인데, 이 꽃은 왜 화려하지 않고 수수할까? 이런 수수함으로 고객을 불러들일 수 있을까?

앞에서 말했듯 벚꽃이나 진달래, 매화 같은 꽃은 낮에 활동하는 벌과 나비를 고객으로 하기에 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눈에 확 띄는 모양과 색깔을 동원한다. 이뿐인가? 가까이 온 고객이 행여 그냥 돌아갈 수도 있으니 ‘바로 여기입니다’라는 의미인 ‘착륙 유도선’까지 제공한다. 예를 들어 제비꽃의 꽃잎에는 얇은 선들이 꽃의 중심을 향해 뻗어 있는데, 멋을 부린 게 아니다. 우리로 치면 도착하는 비행기에 정확한 착륙 위치를 알려주는 유도선 기능을 한다.

달맞이 꽃.

달맞이 꽃.

패랭이꽃은 제비꽃과 달리 꽃 가운데를 동그란 원으로 표시한다. 어떤 꽃들은 고층 건물의 헬리콥터 착륙장 같은, 내려앉아도 안전한 받침대까지 제공한다. 꽃들의 세상에서도 친절하지 않으면 고객 모시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치열한데 달맞이꽃은 어쩌자고 이런 것 하나 갖추지 않고 그저 수수하기만 할까? 꽃가루받이를 못 하면 멸종될 수밖에 없을 텐데.

사실 이 수수함은 뒤떨어진 경쟁력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경쟁력이다. 이 꽃은 이름이 그런 것처럼 저녁에 피어서 아침에 지는데, 활동 무대를 경쟁이 덜한 밤으로 옮기고 색깔도 이에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밤에 활동하는 나방을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서다. 캄캄한 밤에는 울긋불긋한 색깔보다 하얀 듯 노란 듯한 색이 가장 눈에 띄지 않겠는가. 동남아시아에서 나는 유명한 두리안도 마찬가지다. 천국의 맛, 지옥의 냄새 때문에 누군가는 없어서 못 먹고, 누군가는 있어도 못 먹는다는 이 열대 과일은 왕박쥐를 파트너로 하고 있어 꽃이 화려하지 않다. 아니 화려할 필요가 없다. 대신 빽빽한 열대의 숲과 어둠을 뚫고 고객을 부를 수 있는 아찔한 향기를 만든다. 덥고 습한 어둠 속 숲에서는 향기가 훨씬 나은 까닭이다.

고객 지향은 생존의 기본 원리다. 꽃이 꼭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없듯 고객 서비스도 그렇다. 고객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게 중요하다. 의료기기인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만드는 GE의 산업디자이너 더그 디츠는 기기가 설치된 병원을 갔다가 생각지 못한 장면을 접했다. 기계로 된 거대한 통으로 들어가는 게 무서워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성능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MRI를 찍게 되는 아이들의 80%가 진정제를 맞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전문가들과 논의해 검사실을 우주선이나 오두막 같은 환경으로 꾸미고, 거대한 통을 해적선이나 카누처럼 만들었다. 아이들에겐 카누가 뒤집히지 않도록 가만히 누워있어야 한다는 임무를 주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진정제를 맞는 어린이가 27%로 줄었다. 진짜 경쟁력이란 이런 것이다. 꽃 피는 봄날이다. 꽃만 보지 말고 꽃이 가진 존재 이유를 음미할 수 있는 계절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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