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골격계 질환 엉터리 산재 환자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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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중공업 업체 P사는 지난해 5월과 10월 두차례에 걸쳐 건강한 사무직 직원 8명에게 산업재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K병원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있는지를 진단받도록 했다. 이는 K병원에서 근골격계 질환 진단을 받고 입원하는 직원이 급증해 작업에 차질이 생기자 병원의 판정이 과연 적절한지 확인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진단 결과는 회사 측이 걱정했던 대로였다. 건강한 직원 8명 전원이 근막통증후군(목이나 어깨에 통증이 오는 증세).경추부염좌(어깨에 통증이 오는 증세) 등 근골격계 질환 판정을 받았다. 병원 측은 이들에게 2~3주의 입원치료 진단서를 떼줬다. 근골격계 질환은 무거운 물건을 드는 힘든 일이나 조립 공정 등 반복 작업으로 인해 발생하며 목.어깨.허리.팔 등의 부위가 저리고 아프거나 마비되는 직업병이다.

신종 산업재해인 근골격계 질환 판정이 남발되고 있다. 이 질환은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는 전문의들도 판단하기 어려운 병이다. 일부 병원과 근로자들은 이점을 악용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근골격계 판정을 받을 경우 병원에서 쉬면서 급여의 70%(일부 기업은 100%)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가벼운 증상에도 입원치료를 원하기도 한다.

상당수의 병원은 증세가 심하지 않더라도 근로자의 요구대로 근골격계 환자 진단서를 발급해 준다. 환자의 증세가 심하지 않은 경우 입원하더라도 병원 측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전남 목포시에 있는 한 병원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의 ▶무단 외출▶병원 내 음주를 묵인하거나 진료비를 실제보다 많이 청구했다가 지난달 근로복지공단에 적발됐다.

그러나 엉터리 환자를 적발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일단 병원에서 근골격계 질환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하면 대부분이 산재를 인정받는다. 2004년의 승인율은 93.7%였다. 8명에 불과한 공단의 산재 판정 담당 전문의가 연간 4000여건의 병원 진단이 정확한 것인지 판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공단 측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재제도를 운영하는 독일은 병원에서 근골격계 진단을 받은 환자의 2%(1999년)만이 산재로 인정받는다. 700명의 산재 판정 전문의가 빈틈없이 가려내기 때문이다.

국내 근골격계 환자 중 조선업계의 평균 입원기간은 440일로 일반 건강보험 환자 중 근막통증 증후군의 입원기간(44일)의 11배이며 미국 산재보험 환자의 입원 치료기간(28일)의 17배나 된다. 이에 따라 공단이 지난해 9월 말까지 근골격계 환자에게 지급한 치료.요양비는 모두 711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2.7%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엉터리 근골격계 환자 증가가 기업에 부담을 주고 궁극적으로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대기업의 산재 담당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전체 생산직의 약 10%가 근골격계 환자이고 평균 입원기간은 600일에 육박해 생산 차질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과잉진단을 막기 위해선 산재가 없는 회사에 대해 산재보험료를 할인하는 등의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부정이 드러난 경우에는 보다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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