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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6년 … K리그 그리운 34세 강수일

중앙일보

입력

강수일이 축구 경기장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강수일이 축구 경기장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 판정. 이에 따른 징계 기간에 음주 후 교통사고. 두 달 남짓한 기간의 두 사건으로 그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문화 가정 출신의 희망으로 주목받았던 축구선수 강수일(34)은 그렇게 ‘범죄자’의 낙인을 새기게 됐다. 공교롭게도 평생소원이던 국가대표 발탁의 꿈을 이룬 직후여서 본인과 주변의 충격은 더욱 컸다.

거듭된 외면에 어려운 복귀 시도 #금지약물 발모제 사용 불행 발단 #다문화 아동 도와온 그들의 희망 #"제2의 강수일 없게 후배 도울 것"

25일 경기 동두천의 한 운동장에서 강수일을 만났다. 그간 프로축구 K리그 복귀를 위해 애쓴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렸던 터라 근황이 궁금했다. 그는 만나자마자 용서부터 구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수백 번도 넘게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많이 자책했다. 모두가 변명의 여지 없는 내 잘못이다. 질책도 비난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실망한 팬들께 열번, 아니 백번 천번이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수일은 주한미군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없는 차별을 겪으며 자랐다. 그런 그에게 축구는 삶의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었다. 타고난 스피드와 유연성에 ‘꼭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더해 축구에 매달렸다. 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를 통해 K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와 포항 스틸러스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2015년 ‘그 일들’을 겪기 전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다.

강수일이 25일 축구 경기장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강수일이 25일 축구 경기장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도핑 적발 과정은 황당함 그 자체다. 강수일은 “수염을 기르면 더 강해 보일 것 같았다. 발모제 연고를 사서 얼굴에 발랐다. 스테로이드(남성 호르몬의 일종, 금지약물)가 포함된 제품이라는 건 도핑 테스트 결과를 통해 알았다. 단순한 외모 욕심이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 줄 몰랐다”며 고개 숙였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았다. 1~2주 간격으로 5건의 징계가 쏟아졌다. 15경기(프로축구연맹)로 시작한 출전 정지 징계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구단 자체, 대한축구협회, 아시아축구연맹(AFC), 국제축구연맹(FIFA)을 거치면서 6개월에서 1년, 다시 2년까지 늘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술을 마셨고, 결국 음주운전 사고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강수일은 “현실과 마주할 용기가 없어 비겁한 행동을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징계는 끝났지만, 강수일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다. 국내에서 다시 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일본과 태국을 오가며 현역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올 시즌 비로소 용기를 내 K리그 복귀를 타진 중이다. 몇몇 구단에서 테스트도 받았지만, 실력보다 이력이 발목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그는 “저 때문에 화나신 분은 직접 뵙고 사죄드리고 싶다. 모든 걸 버릴 각오로 지난해 해외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강수일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중앙포토

강수일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중앙포토

강수일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중앙포토

강수일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중앙포토

강수일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중앙포토

강수일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중앙포토

강수일의 K리그 복귀 노력에 대해 축구계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올 초 강수일 영입을 추진한 한 시민구단 관계자는 “혹시나 해 행적을 조사했다. 그간 다문화 가정 및 불우 아동을 남몰래 도우며 오랜 기간 봉사 활동을 해왔더라.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뒤 ‘운동으로 보답하겠다’며 어물쩡 넘어갔던 여러 선수와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강수일은 인천 소속이던 2012년 동료들과 ‘아미띠에’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자선 경기와 축구 클리닉 등을 통해 다문화 가정 아동을 도왔다. 코로나19 집합금지 조치가 시행된 지난해를 빼고 7년간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대형사고'를 저지른 2015년 이후에도 봉사활동 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물의를 일으킨 직후엔 '내가 이런 행사를 개최할 자격이 있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많은 분들의 조언을 듣고 용기를 냈다. ‘개인적인 이유로 아이들 행복을 빼앗지 말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에 참가한 강수일(왼쪽 세 번째). 다시 K리그 무대를 누비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중앙포토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에 참가한 강수일(왼쪽 세 번째). 다시 K리그 무대를 누비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중앙포토

축구인들의 시선이 따스하다지만, 팬들이 외면하는 한 K리그 복귀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선 몇 차례 한국 복귀 시도가 좌절된 것도 당시 사건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워낙 강해서다. 게다가 그 이후 반성의 시간에 대해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강수일은 “내 잘못에 실망한 축구 팬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용서를 구할 각오가 되어 있다. 응원해주신 분들께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보여드리고픈 마음도 있다. 팬들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K리그에서 다시 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2의 강수일'이 나오지 않도록 후배에게 도움 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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