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김정은, 바이든 취임식 다음날에도 미사일 쐈다

중앙일보

입력

북한은 2017년 6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지대함 순항미사일 금성-3형 시험 발사를 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2017년 6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지대함 순항미사일 금성-3형 시험 발사를 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이 지난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22일 순항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소식통이 24일 밝혔다. 이는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매체의 보도로 드러난 이달 21일 북한의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에 앞서 이미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했음을 뜻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월 22일 평안북도 구성 인근에서 서해 쪽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바이든 정부 취임(한국시간 1월 21일 오전 2시) 이후 북한의 첫 도발이다.

북한순항미사일발사동향.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한순항미사일발사동향.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 소식통은 “지난 1월 북한이 쏜 발사체는 고도가 낮고 속도는 느려 순항미사일(금성-3호,  KN-19) 개량형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보통 순항미사일은 고도 100~300m의 낮은 높이에서 마하 0.8(시속 970㎞) 가량의 속도로 비행한다. 탄도미사일이나 방사포(다연장 로켓)와 비행 특성이 다르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이달 21일 발사한 단거리 순항미사일은 당일 오전 평안남도 온천 일대에서 서해로 시차를 두고 2발이 발사됐다. 이들 미사일은 저공으로 단거리를 비행해 순항미사일로 판단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달 21일 발사한 순항미사일은 1월 발사했던 기종과 같은 것으로 추정됐다.

군 당국자는 “군은 이달 21일 한·미의 긴밀한 공조 하에 (순항미사일 발사를) 실시간 파악했고 관련 사항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순항미사일은 일차적으론 북한에 접근하거나 상륙하려는 미군 병력을 겨냥하는 의도의 전력 개발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발사체 유형별 궤도와 속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발사체 유형별 궤도와 속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발사 등을 전면 금지하고 있지만 순항미사일에 대해선 아직 제재를 내리지 않았다. 이때문에 북한의 잇따른 순항미사일 발사는 바이든 정부 출범에 맞춰 도발 수위를 조절하면서도 미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더 큰 도발’ 가능성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그간 미국의 정치 행사에 맞춰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는 식으로 대미 메시지를 내곤 했다. 지난해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도 동해로 순항미사일을 쐈다.

2017년 6월 동해상에 설치된 목표 선박을 타격하는 순항미사일과 환호하는 북한군. [조선중앙TV 캡쳐]

2017년 6월 동해상에 설치된 목표 선박을 타격하는 순항미사일과 환호하는 북한군. [조선중앙TV 캡쳐]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와 대화를 거부한 데 이어 순항미사일까지 발사하면서 정부가 희망하는 북·미 대화 조기 재개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미국의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긴급 브리핑을 통해 “지난 주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군사 활동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군사활동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지만, (이번 시험은)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정상적인 군사 활동 범주에 든다”라고도 밝혔다.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를 군사적 도발로 간주해 북·미 긴장을 고조시키지는 않겠다는 취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사일 발사를 위협으로 보는지에 대해 “아니다”라며 “국방부에 따르면 이는 늘 있던 대로의 일(business as usual)”이라고 했다.

북한개발보유미사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북한개발보유미사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표면적으론 이처럼 냉정한 ‘무시 전략’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잇따른 발사는 바이든 행정부에 부정적 대북 인상을 더욱 심화시킬 전망이다.

미국은 다음 주말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과 일본의 국가안보실장을 워싱턴으로 초대해 3자 협의를 통해 북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이 자리에선 한국 정부가 표방하는 대북 관여정책보다는 “외교 가능성을 열어두되 대북 압박을 재개할 수도 있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는 원칙적 대응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변수는 북한의 후속 도발 여부다. 1월 발사에 이어 3월 발사를 앞두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비방 담화가 있었다. 김 부부장은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을 이틀 앞둔 지난 15일 담화문을 내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 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미국에게 경고했다.

북한은 이 담화를 낸 뒤 맞은 첫 일요일 아침(21일)에 순항미사일을 서해 상으로 쐈던 만큼 김여정 담화는 미사일 발사의 예고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미국을 상대로 도발 수위를 계속 높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럴수록 한국 정부의 입지는 위축된다. 북·미가 대화 대신 견제구만 던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핵심 목표로 삼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은 요원해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박용한·박현주 기자,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yong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