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ESG 강화?…경영진 견제 대신 로비스트 전락한 사외이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기업 이사회가 지난해 의결한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의 찬성률이 99.5%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대기업 이사회가 지난해 의결한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의 찬성률이 99.5%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대기업 이사회가 지난해 의결한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의 찬성률이 99.5%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각 기업에서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경영 강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지배구조(G) 개선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7개 대기업 계열사의 사외이사 안건 찬성률 99.5%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24일 64개 대기업집단의 상장계열사 277곳의 이사회 활동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대해 반대(보류·기권 포함) 의사를 표한 경우는 6716개 안건 중 33건(0.5%)에 불과했다. 안건 찬성률이 100%에 가까운 셈이다. 특히 현대자동차·포스코·GS·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들은 모든 사안에 대해 100% 찬성했다. 인사 안건에 대한 반대는 단 한 건에 그쳤고, 특수 관계 거래에 대한 반대도 한 건뿐이었다. 그룹별로 반대 의견은 삼성 3건, SK 2건, LG 1건, 롯데 2건, 한화 3건 등이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ESG 경영이 강조되면서 사외이사와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기능이 중요해졌지만 이사회는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만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기업 집단 사외이사 안건 찬성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지난해 대기업 집단 사외이사 안건 찬성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사외이사가 대관담당·로비스트 전락  

우리 기업에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무렵이다. 회사에서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사내이사 외에 외부 전문가들을 이사회에 투입해 경영진과 대주주를 견제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제도의 목적과 달리 운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수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책임투자팀장은 “사외이사에게 조언과 감시의 역할을 요구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선 대관이나 로비스트 역할을 맡기는 게 사외이사 제도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사외이사 출신별 비중.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사외이사 출신별 비중.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사외이사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에서 뽑는다. 하지만, 현실은 대주주와 경영진의 입김으로 결정된다. 이들이 잘 아는 퇴직 공무원이나 교수들이 주로 자리를 차지한다. 경제·경영 분야 전문가보다는 판·검사처럼 비전문가지만 권력기관 출신을 방패막이로 쓰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조사전문업체 모노리서치가 사외이사의 출신 이력을 분석한 결과, 퇴직 공무원이 39%로 가장 많았다. 교수가 33%로 뒤를 이었다. 이들은 업무량과 비교하면 보수도 좋고, 대외적으로 명망이 있는 자리를 준 것에 고마워한다.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 사외이사가 받은 보수는 1인당 평균 5000만원(4880만원) 수준이다. 전자 업종의 사외이사는 1인당 평균 6811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6년 임기 제한으로 인력난까지

정부는 사외이사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6년(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했다. 장기간 연임하면서 대주주나 경영진과 유착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CEO스코어가 조사한 64개 대기업집단의 상장계열사 277곳에서는 올해 지난해보다 8명 많은 84명의 사외이사가 교체될 예정이다.

문제는 사외이사 임기 제한으로 전문성을 갖춘 인사 선임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50%가 임기 제한 때문에 선임할 수 있는 사외이사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규모별로 보면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58%가 사외이사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사외이사를 찾기 어렵다”며 “지배구조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과도한 사외이사의 임기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