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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논리에 작아진 한전…주주들 "배임소송 하자" 부글

중앙일보

입력

선거철을 앞두고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쟁이 또 시작됐다. 유가 등에 따라 전기요금을 달리 받겠다고 했던 정부가 여론 눈치에 전기요금 인상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인상된 연료비 부담은 결국 한국전력이 전부 질 수밖에 없다. 일부 한전 주주들 “배임 소송을 하겠다”고 반발했다.

“연료비 급등에 요금산정 유보”

정부와 한전이 연료비 급등을 이유로 2분기 전기요금 산정을 유보했다. 연합뉴스

정부와 한전이 연료비 급등을 이유로 2분기 전기요금 산정을 유보했다. 연합뉴스

한국전력은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2분기(4~6월) 전기요금 유보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전은 올해 1월부터 연료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을 달리 받는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연료비 등 발전 원가를 전기요금을 산정에 반영해 쓴 만큼 내자는 취지다.

다만 분기와 1년 기준으로 전기요금 인상 및 하한 폭을 둬 급격한 변동은 막았다. 또 연료비가 단기간에 급등하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요금조정을 유보할 수 있다”는 조항도 뒀다. 이번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막은 것은 이 유보조항을 근거로 했다.

올려도 예전 가격인데…“선거용 눈치 보기”

하지만 정부 이런 조치가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지나친 여론 눈치 보기란 지적도 나온다.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 가격이 급등한 것은 맞지만, 요금인상을 유보할 만큼 과도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이유다.

실제 올해 1분기(1~3월)는 오히려 유가 하락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하한 최대 폭인 1㎾h(킬로와트시)당 -3원 할인했다. 4인 가구 월평균 전력사용량(350㎾h)을 기준으로 하면 1050원 정도 적게 낸다. 만약 2분기 전기요금을 올려도 할인하기 전인 1분기 이전과 같아지는 수준이라 절대 금액에서 비싸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요금조정 유보로 ‘연료비 연동제’ 시행 전보다 한전 사정이 안 좋아졌다는 비판도 있다. 연료비가 싸질 때는 전기요금을 깎아놓고, 연료비가 다시 오를 때는 요금 인상을 막아 한전 부담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해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했지만, 결국 요금만 깎아준 셈”이라며 “나쁜 선례를 남긴 만큼 앞으로도 연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시행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 때도 2011년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전기요금 인상 비판을 우려해 유보하다 결국 백지화했다.

한전 주주 “배임소송” 분노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본부 모습. 뉴스1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본부 모습. 뉴스1

오락가락 정책에 당장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한전 주주다. 전력요금 인상 유보 발표가 있던 지난 22일에만 한전 주식은 전날 대비 -4.76% 급락했다.

한전 투자자들은 분노했다. 한전 주주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전과 문재인 정부 사기 연동제”, “이럴 거면 차라리 상장 폐지하자”는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일부 주주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한전에 배임소송을 하자”며 독려했다.

전기요금을 둘러싼 진통은 이번만이 아니다. 산업부는 지난 2019년 여름철 전기요금 주택용 누진제를 완화했다. 폭염으로 전기요금이 급등하면 정부 탈원전 정책에 비판이 나올 것을 우려해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요금을 깎아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한전도 추가적자와 이사진 배임 등을 우려하면서 누진제 개편안을 반대했다. 하지만 결국 다른 전기요금 할인혜택을 줄이는 요금개편안을 추진하는 조건으로 정부 안을 수용했다.

전기요금뿐 아니라 정부 정책 추진에서도 한전 이익이 과도하게 침해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신입생 감소로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한전이 5000억원을 들여 한전공대를 짓는 것은 배임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나태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말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전기요금 같은 것들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정치적 논리 없이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면서 “그때마다 정책이 바뀌고 한전이 이를 떠 안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정말 중요한 다른 정책들을 추진할 힘도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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