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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인도된 북한인 첫 재판…"北에 사치품 공급, 16억 돈세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가 지난 21일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대사관을 떠나기 전에 성명을 읽고 있다. [EPA=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가 지난 21일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대사관을 떠나기 전에 성명을 읽고 있다. [EPA=연합뉴스]

대북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된 뒤 미국으로 인도된 북한 국적자 문철명(55)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 법원에 출석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문씨는 미국 법원에서 재판받는 첫 북한 국적자다.

미 법무부 "北 국적자 처음으로 美 법정 출석" #"싱가포르서 北으로 사치품 공급, 제재 위반" #말레이시아서 체포 22개월 만에 범죄인 인도

법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2년 가까운 법적 절차 끝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국적의 문철명이 미국으로 송환됐다"면서 "이 사건은 북한 국적자가 미국에 범죄인으로 인도된 첫 사례"라고 밝혔다.

문 씨는 대북 제재를 받는 북한에 사치품을 반입하고, 이를 위해 유령회사를 세워 돈세탁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존 데머스 법무부 국가안보담당 차관보는 "기소장에 따르면 문 씨는 미국과 유엔이 북한에 부과한 반 확산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우리는 제재 회피를 막고 안보 위협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해서 법을 폭넓게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공소장과 법원 문서에 따르면 문 씨는 공범들과 2013년 4월부터 2018년 11월 사이 미국 금융시스템에 접근해 모두 150만 달러(약 16억원)가 넘는 거래를 하면서 은행을 속이고 자금을 세탁하는 방식으로 미국과 유엔 제재를 위반했다.

문 씨는 싱가포르에서 북한으로 유엔이 반입을 금지한 사치품을 공급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미 법무부는 문 씨가 미국과 유엔의 제재 대상인 북한 정보기관인 정찰총국과 연계돼 있다고 보고 있다. 정찰총국은 북한에서 대외 공작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이다.

미 법무부는 공소장에서 문씨 등이 유령회사와 가짜 명의로 등록된 은행 계좌를 사용해 북한과의 관련성을 숨기고, 의도적으로 북한 기관에 송금하는 사실을 은폐해 미국 은행을 기만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가 21일 정문을 걸어잠그고 있다. [EPA=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관계자가 21일 정문을 걸어잠그고 있다. [EPA=연합뉴스]

문 씨는 2019년 5월 2일 워싱턴 DC 연방 법원에서 기소된 뒤 5월 14일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돼 구금돼 있었다고 법무부는 전했다. 말레이시아 법원이 문 씨의 신병 인도를 승인하면서 송환이 이뤄졌다.

문 씨는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신병 인도를 기각해달라고 말레이시아 법원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북한은 지난 19일 문 씨의 송환을 이유로 말레이시아와 단교를 선언한 뒤 미국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측은 문 씨를 '무고한 우리 공민'으로 지칭하며 말레이시아 당국이 그를 범죄자로 매도해 미국에 인도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미 법무부는 문 씨 체포 작전에 미 연방수사국(FBI)과 미군 인도 태평양사령부까지 동원됐다고 전했다. FBI 방첩 담당 앨런 콜러 국장보는 "방첩과 관련해 FBI에 가장 큰 도전과제는 특히 북한처럼 해외에 있는 피고인을 재판에 세우는 것"이라며 "해외 기관과 협력 덕분에 문 씨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젤리나 포터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문 씨의 재판이 북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묻는 말에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계속해서 전념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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