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된 뒤 미국으로 인도된 북한 국적자 문철명(55)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연방 법원에 출석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문씨는 미국 법원에서 재판받는 첫 북한 국적자다.
미 법무부 "北 국적자 처음으로 美 법정 출석" #"싱가포르서 北으로 사치품 공급, 제재 위반" #말레이시아서 체포 22개월 만에 범죄인 인도
법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2년 가까운 법적 절차 끝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국적의 문철명이 미국으로 송환됐다"면서 "이 사건은 북한 국적자가 미국에 범죄인으로 인도된 첫 사례"라고 밝혔다.
문 씨는 대북 제재를 받는 북한에 사치품을 반입하고, 이를 위해 유령회사를 세워 돈세탁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존 데머스 법무부 국가안보담당 차관보는 "기소장에 따르면 문 씨는 미국과 유엔이 북한에 부과한 반 확산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우리는 제재 회피를 막고 안보 위협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해서 법을 폭넓게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공소장과 법원 문서에 따르면 문 씨는 공범들과 2013년 4월부터 2018년 11월 사이 미국 금융시스템에 접근해 모두 150만 달러(약 16억원)가 넘는 거래를 하면서 은행을 속이고 자금을 세탁하는 방식으로 미국과 유엔 제재를 위반했다.
문 씨는 싱가포르에서 북한으로 유엔이 반입을 금지한 사치품을 공급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미 법무부는 문 씨가 미국과 유엔의 제재 대상인 북한 정보기관인 정찰총국과 연계돼 있다고 보고 있다. 정찰총국은 북한에서 대외 공작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이다.
미 법무부는 공소장에서 문씨 등이 유령회사와 가짜 명의로 등록된 은행 계좌를 사용해 북한과의 관련성을 숨기고, 의도적으로 북한 기관에 송금하는 사실을 은폐해 미국 은행을 기만했다고 밝혔다.
문 씨는 2019년 5월 2일 워싱턴 DC 연방 법원에서 기소된 뒤 5월 14일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돼 구금돼 있었다고 법무부는 전했다. 말레이시아 법원이 문 씨의 신병 인도를 승인하면서 송환이 이뤄졌다.
문 씨는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신병 인도를 기각해달라고 말레이시아 법원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북한은 지난 19일 문 씨의 송환을 이유로 말레이시아와 단교를 선언한 뒤 미국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측은 문 씨를 '무고한 우리 공민'으로 지칭하며 말레이시아 당국이 그를 범죄자로 매도해 미국에 인도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미 법무부는 문 씨 체포 작전에 미 연방수사국(FBI)과 미군 인도 태평양사령부까지 동원됐다고 전했다. FBI 방첩 담당 앨런 콜러 국장보는 "방첩과 관련해 FBI에 가장 큰 도전과제는 특히 북한처럼 해외에 있는 피고인을 재판에 세우는 것"이라며 "해외 기관과 협력 덕분에 문 씨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젤리나 포터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문 씨의 재판이 북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묻는 말에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계속해서 전념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