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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환경라이프] ‘안만 예쁘면 뭐해, 겉이 착해야지’…예쁜 쓰레기는 가라!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LG광화문빌딩 앞에서 화장품어택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화장품 용기 재활용 문제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 화장품 용기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LG광화문빌딩 앞에서 화장품어택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화장품 용기 재활용 문제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 화장품 용기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화장품에서 중요한 건 늘 기능과 성분이었다. 주름 개선과 미백 효과는 얼마나 좋은지, 알러지나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은 없는지, 얼마나 순하고 피부에 자극이 없는지 등.

플라스틱 용기 90%, 재활용 어려워 

하지만 최근 화장품 업계의 최대 화두는 ‘용기’다. 전 지구적인 과제가 돼 버린 플라스틱 줄이기의 걸림돌 중 하나로 화장품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20일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패스포트 GMID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총 1521억개의 화장품 용기가 판매됐고, 이 중 플라스틱류는 43%를 차지한다. 문제는 화장품 플라스틱 용기의 상당수가 재활용이 어려운 변성 PET 수지로 돼 있거나, 몸통은 플라스틱인데 눌러서 펌프질 하는 부분은 금속 용수철로 돼 있고 다른 일부는 유리로 장식이 돼 있는 등 복잡한 구조와 복합재질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포장재 재활용사업 공제조합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재활용이 안 되는 제품이 무려 90%나 된다. 화장품 용기를 ‘예쁜 쓰레기’라고 하는 이유다.

결국 환경부는 내년에 생산되는 화장품 용기부터 얼마나 재활용이 잘 되는지 ‘등급’을 표시하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10개 중 9개의 화장품 용기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새겨질 전망이다. 지금껏 화장품 용기를 디자인과 성분 보호 차원에서만 생각하던 업체들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어려움’ 등급에 대한 환경부담금 등 정부의 제재도 문제지만, 재활용이 안 되는 용기를 판매하면 할수록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수출상 불이익, 무엇보다 친환경 정보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이에 담긴 ‘착한 화장품’ 

아모레퍼시픽이 개발한 화장품 종이용기 샘플. 사진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이 개발한 화장품 종이용기 샘플. 사진 아모레퍼시픽

자의든 타의든 업계는 친환경 포장재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 12일 친환경 화장품 종이 용기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기존 용기 대비 플라스틱이 70% 덜 들어가고 3년간 유통할 수 있는 제품이다. 화장품용 종이튜브는 앞서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기업인 한국콜마가 국내 최초로 개발해 관심을 모았었다. 뚜껑을 제외한 용기 본체가 종이 튜브로 돼 있어 내용물을 다 쓰고 나면 절취선을 따라 제거해 분리 배출하는 식이다.
아모레퍼시픽의 기술은 장기간 사용가능한 종이 용기의 상용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영호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장은 “이번 기술을 올 상반기 중 ‘프리메라’ 제품에 적용해 출시할 예정”이라며 “유통 기한을 보장하면서 100% 퇴비화가 가능한 종이 용기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쿱이 종이 포장재를 적용해 내 놓은 '케어셀라 르끌레어' 비건 립스틱과 색조 팔레트, 사진 지쿱

지쿱이 종이 포장재를 적용해 내 놓은 '케어셀라 르끌레어' 비건 립스틱과 색조 팔레트, 사진 지쿱

화장품 직접판매 유통기업 지쿱도 립스틱의 뚜껑과 본체를 감싼 포장지, 색조 팔레트 케이스를 플라스틱 대신 종이 소재로 제작해 재활용이 쉽도록 했다.

아모레퍼시픽 산하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화장품 세트 상자에 화장품을 고정하기 위해 사용되던 플라스틱 틀을 재활용이 쉬운 펄프몰드로 바꾼 ‘비자 트러블 스킨케어 세트’를 내놨다. 펄프몰드는 천연펄프와 폐지 등 각종 원료를 물과 섞어 만든 포장재로 재활용이나 생분해가 쉽다.

현실적 대안, 용기 재사용

아로마티카 '리필 스테이션' 모습. 사진 아로마티카

아로마티카 '리필 스테이션' 모습. 사진 아로마티카

대기업보다 더 앞서나가는 곳들도 있다.
화장품 제조업체 아로마티카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전 제품에 PCR(Post Consumer Recycled) 용기를 사용하고 있다. PCR은 말 그대로 소비자가 사용했던 폐유리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용기다.
회사 측은 “지난 한 해 동안 폐유리·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용기과 리필팩 제품이 141만233개 판매됐는데 이는 1만2553그루의 나무가 1년간 흡수하는 탄소량인 약 66t의 탄소를 절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재활용이 어려운 펌프 부분을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이 가능한 캡 마개로 대체해 나가고 있으며 올 상반기부터 샴푸 용기의 색을 빼고 투명한 100% PCR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해 재활용이 쉽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용기에 내용물만 채워 다시 쓰는 ‘리필 스테이션’도 늘고 있다.
아로마티카의 경우 서울 망원동에 있는 ‘알맹상점’에 리필 스테이션을 연 이후, 신사동 본사 2층 등으로 점점 리필 코너를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는 빈 용기에 샴푸와 컨디셔너·클렌저·토너 등 18가지 제품을 충전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역시 비록 첫 방문 시 리필용 용기를 구입해야 하지만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광교 앨리웨이’에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플라스틱 쓰레기 급증 등 환경 문제가 더욱 부각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다양한 환경보호 방안을 내놓고 있다”며 “미래 세대인 20~30대를 중심으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 줄이기) 운동이 활발한 만큼 기업들도 친환경 활동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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