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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에 쉽게 노출된 청소년, 앞장서 알코올 위험성 경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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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호 28면

[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음주 예방 ‘스티커 쇼크’

미국 뉴욕주 알레가니 카운티와 일리노이주 윌 카운티 주민들이 청소년들의 음주 예방을 위한 ‘스티커 쇼크’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PPAC 센터럴, 윌리 카운티 경찰청, 버논 록스, 스트래트퍼드 파트너십]

미국 뉴욕주 알레가니 카운티와 일리노이주 윌 카운티 주민들이 청소년들의 음주 예방을 위한 ‘스티커 쇼크’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PPAC 센터럴, 윌리 카운티 경찰청, 버논 록스, 스트래트퍼드 파트너십]

“이거 사도 돼요.” “안돼. 술이잖아.” “음료수 같은데….”

1998년 시작 미 청소년 ‘풀뿌리 운동’ #“알코올 중독은 우울증·폭력 유발” #스티커 만들어 주류 포장지에 붙여 #2005년 모든 판매점 부착 의무화 #한국은 청소년 음주문화에 관대 #술 쉽게 살수 있는 구매환경 문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딸과 아빠가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고르며 나눈 대화다. 그러고 보니 편의점 음료 매대의 골든 존, 즉 진열대의 중간 높이 칸에는 시선을 끄는 화려한 주류 제품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국내외 유명 맥주를 비롯해 감각적인 포장의 수제 맥주까지, 오랜 시간 매대의 주요한 자리는 늘 화려한 주류가 차지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은 주류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이들 제품을 접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강력한 잠재고객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 마트도 예외는 아니다. 주류 판매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술을 고르는 부모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류 판매상 허락 받고 스티커 부착

미국 뉴욕주 알레가니 카운티와 일리노이주 윌 카운티 주민들이 청소년들의 음주 예방을 위한 ‘스티커 쇼크’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PPAC 센터럴, 윌리 카운티 경찰청, 버논 록스, 스트래트퍼드 파트너십]

미국 뉴욕주 알레가니 카운티와 일리노이주 윌 카운티 주민들이 청소년들의 음주 예방을 위한 ‘스티커 쇼크’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PPAC 센터럴, 윌리 카운티 경찰청, 버논 록스, 스트래트퍼드 파트너십]

이런 모습이 무슨 문제가 되냐고 되묻기도 하지만 199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청소년들은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주류 판매점 내에서 알코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청소년을 위한 음주 예방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그들은 스티커 쇼크라는 참여형 캠페인을 제안했다. 이 캠페인은 바로 다음 해인 1999년 펜실베이니아주 전체로 확대됐다. 모든 활동은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로 이루어지며 참여 방법도 매우 간단했다. 청소년들이 음주와 관련한 다양한 경고 문구를 넣은 스티커를 제작한 후 주류 판매점을 방문해 개별 포장지에 부착하는 봉사활동으로 기획됐다. 사전에 취지에 공감하는 소매점 업주의 허락을 받고 함께 협력하기 때문에 별다른 갈등도 없었다. 스티커 제작에서부터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협력을 끌어내는 일련의 과정 전체가 자율적으로 수행됐다.

캠페인을 통해 제작된 스티커에는 이 제품은 중독성이 있다는 경고 문구에서부터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할 경우 불법임을 알리는 문구가 포함됐다. 예를 들어 청소년 음주는 자살과 우울증, 성폭행, 원치 않는 임신, 폭력 및 알코올 중독과 관련이 있음을 주류 구매자에게 상기시켰다. 청소년이 음주를 경험하거나 주류를 접하게 되는 주요한 통로가 다름 아닌 부모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알코올이 청소년의 뇌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알려 주기도 했다. 이렇듯 작은 경고 스티커는 정보 캠페인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음주 예방 ‘스티커 쇼크’ 그래픽

음주 예방 ‘스티커 쇼크’ 그래픽

이 캠페인의 참여 형식은 같았지만, 스티커 안에 담는 내용과 디자인은 제한이 없었다. 지난 23년간 각 주에서 다양한 형태로 참여가 이어진 결과 청소년의 주요한 봉사활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스티커 쇼크 캠페인을 통해 만들어진 스티커의 종류와 활동 내용은 정확한 통계가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다.

하지만 스티커 쇼크 캠페인이 무분별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캠페인에 참여하려는 학생들은 반드시 학교 선생님이나 지역 보건소 담당자의 지도를 받아 사전에 스티커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고 진행됐다. 지역 기반 자원봉사로 자리 잡으면서 일부 지역 봉사단체는 사전에 스티커를 제작해 놓고 이를 배포함으로써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미국 메인주에서는 2001년 포트 켄트 지역 청소년 모임이 스티커 쇼크 캠페인에 참여했다. 당시 지역의 한 주류 소매상이 동참한 후 같은 해 약 400개 점포로 빠르게 확대됐다. 이런 성과를 기반으로 매년 5월과 12월 캠페인이 정례화됐고 2005년에는 모든 소매 주류 판매점이 스티커 쇼크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누구든 개별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지만 명확한 캠페인 지침을 제공하여 현장에서의 혼선을 최소화했다. 스티커는 가능한 병이나 캔에 직접 붙이지 않고 멀티팩이나 포장재에 부착하게 한다거나 브랜드 이름이나 바코드를 가리지 않도록 했다. 또 캠페인에 참여하는 모든 청소년은 반드시 성인과 동반해야 한다. 이들은 반드시 주류 판매점 방문 전에 부모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스티커 쇼크 캠페인은 두 가지 인식 제고 성과를 거두었다. 청소년 음주에 관한 문제의식과 성인들의 음주 행위나 주류소비가 청소년에게 어떻게 노출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식개선이다.

한국, 6월부터 심야 방송서 주류 광고

텍사스주와 코네티컷주 주류 코너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PPAC 센터럴, 윌리 카운티 경찰청, 버논 록스, 스트래트퍼드 파트너십]

텍사스주와 코네티컷주 주류 코너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PPAC 센터럴, 윌리 카운티 경찰청, 버논 록스, 스트래트퍼드 파트너십]

이 성과를 놓고 우리 현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 음주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의 흡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10대 알코올 중독환자 32.6%(2018), 식약처 주류 소비 섭취 실태조사 결과 10대 폭탄주 음주 경험자 30.1%(2017) 등 자세히 살펴보면 청소년 음주는 오랜 시간 개선되지 않고 있는 사회문제 중 하나다. 이미 2019년 국정감사에서 청소년 알코올 중독 환자의 급증에 따른 경고 신호를 우리 사회에 보낸 바 있다. 이러한 결과는 청소년 음주에 관대한 사회문화와 술을 쉽게 접하고 구할 수 있는 구매 환경 때문이다.

통계청의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한 달 동안 한 잔 이상의 술을 마신 청소년의 비율, 즉 청소년 음주율이 2013년 이후 15~16%대에 머물며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은 편의점과 마트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현 주류 판매 방식과 무관치 않다. 현행법에 따라 술병에는 ‘과다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 문구가 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용기 라벨의 크기나 브랜드의 화려함에 비하면 주목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텍사스주와 코네티컷주 주류 코너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PPAC 센터럴, 윌리 카운티 경찰청, 버논 록스, 스트래트퍼드 파트너십]

텍사스주와 코네티컷주 주류 코너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PPAC 센터럴, 윌리 카운티 경찰청, 버논 록스, 스트래트퍼드 파트너십]

이런 문제해결을 위해 주류 용기 음주 경고 문구 및 경고 그림 개선, 소주 광고의 성 상품화 방지 등을 위한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18년 이후 연이어 발의되기도 했다. 올 1월에는 보건복지부가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 공공장소 음주규제 입법과 공공장소 금주 구역 확대 운영 지침 마련 등 주류 접근성 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방통위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인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 방안’을 통해 6월부터 심야 방송에서 17도 미만의 주류 가상·간접 광고(PPL)를 허용키로 했다. 현재 주류는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모든 광고가 금지(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되어 있다. 가상·간접 광고도 2010년 방송법 시행령(제59조 2항)에 의해 모든 시간대에서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방통위 개정안으로 주류의 가상·간접 광고가 허용된 것이다. 밤 10시 이후 주류 광고를 할 수 있는데 가상·간접 광고만 하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한 규제라는 것이 방통위의 주장이다.

업계의 움직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처럼’은 올해 제품 모델로 아이돌 스타인 블랙핑크 제니를 내세웠다. 급증하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 공간에서의 주류 노출과 음주 또한 무방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도한 규제로 관련 산업을 위축시켜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청소년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주류의 이미지가 잠재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신중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를 분노케 한 사건 사고의 중심에 대부분 음주라는 행위가 관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면 괜한 걱정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지금 스티커 쇼크 같은 캠페인이 더 절실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 하지만 실현되기 어려운 정책의 사각지대를 지역사회가 메꿔 준 풀뿌리 캠페인의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 메꾼 자리에는 청소년들의 봉사활동이 심어졌다. 이런 활동을 중시하는 ESG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경영이 주목받는 2021년 주류 업체들도 마케팅을 위해 아이돌 스타를 등장시켜 시선을 끌기보다 오히려 10대들이 참여하는 올바른 음주 예방 공익캠페인에 조금만이라도 시선을 돌려 보면 어떨까?

이종혁 광운대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공공소통연구소 소장이다. 디자인 씽킹과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캠페인 개발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발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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