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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퇴직 후 다음 스텝? 자신을 믿고 한 발부터 떼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58)  

“나이 50 넘어 재취업이라니, 대단하네!”
취업했다는 말을 전하자 친구와 지인들이 보여준 반응이었다. 물론 진심 어린 축하도 함께였다.

작년 연말 회사를 그만둔 후 두 달여가 지났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모색을 해 본 시간이었다. 처음 몇 주는 집에 머물며 책도 읽고 둘레길도 걸었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니, 몸에 가득 차 있던 ‘텐션(긴장상태)’을 확실히 덜어낼 수 있었다. 머리가 가벼워지니 해 보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우선 디지털 채널을 직접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제작 역량을 키우고 싶었다. 유튜브, 팟캐스트, 인스타그램 등에 올릴 영상과 음성 콘텐츠를 촬영하고, 녹음하고, 편집하는 일 말이다. 그동안은 근무했던 회사 내 PD와 에디터 등 담당 스태프들이 있어 입만 보탰던 일을 혼자서 해보고 싶었다.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고, 면접을 마치고 학기를 시작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기술교육원의 영상 크리에이터 교육 과정인데,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부터 촬영과 프리미어 편집까지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서울시 50플러스 재단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 등 1인 채널 개설 관련 온라인 수업도 신청했다. 줌으로 하는 수업이니 큰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겠다 싶었다. 브라보! 이렇게 몇 달 열심히 하다 보면 나의 채널을 제대로 구축할 수 있겠구나.(출근을 하게 된 후 아쉽지만 학습에 관한 계획은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사자와 얼룩말의 대치. 어느 쪽이 한 번 더 뛰느냐가 모든 상황을 바꾼다고 한다. [사진 Avel Chuklanov on unsplash]

사자와 얼룩말의 대치. 어느 쪽이 한 번 더 뛰느냐가 모든 상황을 바꾼다고 한다. [사진 Avel Chuklanov on unsplash]

그렇다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만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두 가지 선택지 중 한 가지를 정해야 했다. 심플하게 말해 취업을 할지 창업을 할지 말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작게든 크게든 사업을 해오고 있는 지인이 꽤 있었다.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럴수록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번 해보겠다고 목표했던 사업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시작하고 운영할지 계획이 세워져 있는 것도 아니며, 자본과 조력자가 충분한 것도 아니니 선뜻 사업자로 전환하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 이 부분은 열어놓고 상황이 무르익기를 기다려보자.

그렇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일의 연장선에서 나의 경험을 사 줄 만한 곳을 찾아 지원하는 방법과 앞으로 내가 일해 보고 싶은 분야를 도전하는 마음으로 찾아보는 것, 이렇게 두 가지 방안이 있었다. 흔히들 퇴직을 염두에 두는 나이인 50세가 넘어 취업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미리부터 자신 없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나의 경험에 관심을 가지는 곳은 분명 존재한다고 믿었다.

잡지사에서 26년을 근무했으니 해 왔던 일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몇 년이 됐든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었던 일을 찾아봐야 한다. 편집장으로 한 매체의 콘텐츠를 책임진다는 건 단순히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만을 말하지 않는다. 매체의 운영, 그러니까 매체가 지속 가능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구조를 짜야 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일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둔 일이 있었다.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에서의 근무. 사기업과는 목표점이 다른 과업을 수행해보고 싶었다.

나에게 지난 2개월은 부족한 부분, 해보고 싶었던 부분을 채우는 과정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이었다. [사진 Glenn Carstens Ppeters on unsplash]

나에게 지난 2개월은 부족한 부분, 해보고 싶었던 부분을 채우는 과정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이었다. [사진 Glenn Carstens Ppeters on unsplash]

경력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구인하는 곳이 매체사가 아닌 이상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을 딱 맞는 스펙으로 찾는 곳은 없다. 업무의 성격, 필요한 자격증, 제시된 직급에 맞는 적당한 경력 등이 나의 상황과 조금씩 벗어난 곳이 대부분이었다. 채용조건에 한 번 주춤하고, 지원서에 필요한 과업수행서를 쓰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일까 또 한 번 주춤했다. 어느 날은 ‘그래도 이게 맞아’식의 자신감이 생겼지만, 또 다음 날은 ‘정말 이 방향이 맞는 걸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기사를 한 줄이 눈에 들었다. 중앙선데이에 실린 서광원 인간 자연 생명력 연구소장의 글이었는데,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벌어지는 사자와 얼룩말의 쫓고 쫓기는 필살의 달리기 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100~200m 사이에서 초접전 상황이 벌어지는데, 사실 이 상황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얼룩말은 갑자기 뛰기 시작했기에 숨이 가쁘고 사자는 한계 시점에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렇다. 이 숨 막히는 균형은 어느 순간 한쪽으로 확 기우는데 대개 아주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요인이 작용한다. 누가 한 번 더 힘을 내 조금 더 뛰고, 한 번 더 뛰느냐 하는 게 그것이다. 얼룩말이 죽을 힘을 다해 한 번 더 뛰면 죽음에서 멀어질 수 있다. 사자가 젖 먹던 힘을 다해 한 번 더 뛰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승부는 많은 경우 1~2m가 아니라 아슬아슬하다고 할 수 있는 10~20㎝ 차이로 갈린다.”

'나를 믿고 움직여라'는 20대부터 내가 가진 모토였다. 이번에도 그렇게 시도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사진 Diego d Ambrosio on unsplash]

'나를 믿고 움직여라'는 20대부터 내가 가진 모토였다. 이번에도 그렇게 시도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사진 Diego d Ambrosio on unsplash]

한 번 더 힘을 내 조금 더 뛰고, 한 번 더 뛰느냐가 중요하다. 미리 결과를 예측하지 말고 일단은 해보고 싶은 일로 뛰어들자. 마음에 둔 몇 군데에 지원했고, 면접을 거쳐 지난주부터 근무하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정보원의 공공저작물 사업관리 책임이 새롭게 시작한 나의 일이다. 최선을 다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 민간기업과 공공에서의 업무 진행 과정의 차이 등 여러 면접 질문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답을 하려 노력했다. 새롭게 시작한 공공기관에서의 업무와 근무지가 있는 상암동의 분위기에 대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겠다.

‘분기점에서는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 힘들 때 조금 더 힘을 내서 한 번 더,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 많은 것을, 때로는 삶 자체를 바꾼다’는 기사의 마지막 단락이 나에게 용기를 준 것처럼,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을 믿고 한 발을 떼라. 그 방법밖에 없다.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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