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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두가지 꿈 이야기, ‘싱어게인’ vs 돈키호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56)  

얼마 전 최종 우승자가 결정된 JTBC의 ‘싱어게인’은 재방송을 찾아가며 시청한 프로그램이었다. ‘세상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재야의 실력자, 한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잊힌 비운의 가수 등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설 수 있도록 돕는 신개념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스스로 명명한 무대다.

다른 경연 프로그램과 다르게 참가자들은 이기기 위한 선곡이나 두드러지기 위한 무대가 아닌 지금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가수로서의 모습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는데,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찐 무명가수’ 이승윤은 ‘장르가 30호’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개성 있는 에너지를 전달하며 우승을 했고, 정통 헤비메탈 가수이지만 누구보다 스윗한 태도를 지닌 40대 참가자 정홍일은 심사위원 모두를 팬으로 만들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조용필의 ‘꿈’을 자신의 마음을 담아 부른 이무진의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사진 JTBC]

조용필의 ‘꿈’을 자신의 마음을 담아 부른 이무진의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사진 JTBC]

3위를 한 스물두 살의 가수 이무진도 인상적이었다. 유튜브 조회 수가 1600만을 훌쩍 넘었다는 그의 첫 무대 ‘누구 없소’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이 가수가 되겠다는 자신에게 전했던 ‘너는 할 수 없을 거야’라는 말을 떠올리며 선곡했다는 조용필의 ‘꿈’. “이 세상 어디가 꿈이고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라며 노래를 부르던 무대 속 그의 모습이 응원하고 싶을 정도로 진지했기 때문이다. “자신 없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저의 마음은 똑같아요. 제가 준비한 대로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무대를 꾸미고 내려오겠다”는 인터뷰처럼 말이다. 무명이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노래와 가수로서의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버텨온 이런 참가자들의 마음이 와 닿았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을 쫓아다니며 시청한 이유였다.

두 달 가까운 연기 끝에 오픈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코로나 속에서도 작품과 배우를 만나고 싶은 관객들로 극장 안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사진 오디컴퍼니]

두 달 가까운 연기 끝에 오픈한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코로나 속에서도 작품과 배우를 만나고 싶은 관객들로 극장 안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사진 오디컴퍼니]

이번 설 연휴 또 하나 꿈을 이야기한 노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 싸움 이길 수 없어도 /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 길은 험하고 험해도 /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 힘껏 팔을 뻗으리라,”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수록곡 ‘이룰 수 없는 꿈’을 공연에서 직접 듣게 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오픈일이 두 달 가까이 미뤄졌지만, 이달 초부터 열리게 된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작품에 대한 관심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뮤덕(뮤지컬 덕후)’인 중학생 딸아이의 바람 때문이다. 작품 속 뮤지컬의 넘버들을 외우고 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데다 조승우의 팬이니 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공연이었지만, 티켓을 구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다. 0.1초 차이로 매진이 되는 몇 차례의 ‘피켓팅(피가 튀기는 전쟁 같은 티켓팅)’ 경험을 통해 어렵사리 표를 구할 수 있게 되었고, 행복에 겨워하는 딸과 공연장으로 향했다.

2005년 국내 초연 후 9번째 시즌을 맞은 ‘맨오브라만차’는 소설 『돈키호테』와 그 작품의 저자인 세르반테스를 한 번에 무대로 소환한다. 시인이자 세무 공무원인 세르반테스가 풀어 놓는 돈키호테의 이야기인 셈인데, 무대 위에서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교회에 세금을 징수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앞둔 세르반테스는 감옥에 수감되고, 이곳에서 자신이 쓴 돈키호테의 모험담을 죄수들에게 풀어 놓는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라만차에 사는 노인 알론조는 기사가 등장하는 책들을 너무 많이 읽어 어느새 자신이 기사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만다. 그리고 산초와 함께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집을 나선다. 풍차를 거대한 적이라 생각해 달려들고, 주막을 성으로 여겨 주막 주인에게 기사 작위를 요청하며, 그곳에서 일하는 창녀 알돈자를 자신이 지켜야 할 고귀한 여인 ‘둘시네아’로 칭송하며 노래를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알론조, 즉 돈키호테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모험을 이어간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달해 준 조승우. 그 역시 중학교 시절 이 뮤지컬을 처음 보고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사진 오디컴퍼니]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달해 준 조승우. 그 역시 중학교 시절 이 뮤지컬을 처음 보고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사진 오디컴퍼니]

스페인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돈키호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의 부정함에 돌격하는 정신 나간 노기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정의와 사랑이 넘쳐난다. 비록 자신이 만든 환상 속 세상이지만 어떤 상황에도 신념을 잃지 않고 노쇠한 몸을 이끌며 창을 휘두른다. 그의 그런 모습에 손뼉 치고 싶은 것은 지금의 무거운 현실을 깨치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닐까. ‘우리 모두가 라만차의 기사입니다’라는 조승우의 마지막 대사 뒤로 관객들이 전한 큰 박수는 이런 이유일 것이다.

공연 후 상기된 표정으로 극장 문을 나서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나보다 키가 더 커버리고, 어깨도 꽤 넓어진 딸아이도 조만간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 공연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꿈은 구속받아서는 안 된다, 닿기 어렵더라도 용기를 가지고 팔을 뻗어야 한다고.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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