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형식적 '적법 논리'에 갇혀 진짜 소통이 길을 잃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1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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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통령 사저 논란에서 나타난 청와대 소통 문제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가 들어설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일대.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이 일대 5필지 3774㎡ 규모의 부지를 구입했다. 올 초에는 부지에 포함된 농지를 대지 지목으로 바꾸는 형질 변경 절차까지 마쳤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가 들어설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일대.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이 일대 5필지 3774㎡ 규모의 부지를 구입했다. 올 초에는 부지에 포함된 농지를 대지 지목으로 바꾸는 형질 변경 절차까지 마쳤다. [연합뉴스]

"그 정도 하시라.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퇴임 후 사저 문제를 공격하는 야권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은 적절했을까. 기업 홍보 전문가 A씨는 "기업 위기관리 차원에서 본다면 사고에 가까운 실책"이라고 평했다. 불리한 이슈에 대한 정제되지 않은 반응은 더 큰 논란과 여론 악화를 부를 뿐이라는 이야기다. 감정이 나서면 소통은 멈춘다. 아무리 억울한 상황에서도 거친 감정 표출은 소통의 최대 금기다.

법 허점 이용했다는 의구심에
설명 대신 문제없다 말만 반복
현안 침묵 끝에 감정 폭발 악수
"기업 위기관리라면 중대 사고"

 진중한 스타일의 대통령이 왜 이렇게 감정을 폭발했을까. 법적으로 문제없는 사안에 대해 계속 공격해대는 야당의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법과 정치는 다르다. 대통령의 '짜증'은 문재인 정부 소통 방식의 문제점들이 응결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의 양산 사저 부지 의혹 제기를 비판하며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올린 소셜 미디어 글. [문 대통령 트위터 캡처]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의 양산 사저 부지 의혹 제기를 비판하며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고 올린 소셜 미디어 글. [문 대통령 트위터 캡처]

'영농 경력 11년' 설득력 있나
헌법 121조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라 농지법 6조 1항은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농지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에 '농지취득자격증명' '농업경영계획서' 등을 농지가 있는 시·구·읍·면에 제출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4월, 농지 1844.9㎡가 포함된 경남 양산 사저 부지를 사들이면서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그러나 농지 취득 규정은 허점이 많다. 규정은 다분히 형식적이다. 일선 공인중개사들은 "영농 계획과 농기구 조달 계획 등만 양식에 맞게 제출하면 취득자격증명은 거의 문제 없이 나온다"고 말한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도 이런 허점을 악용했다. 대통령의 농지 취득도 법의 빈틈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비합리적이라고 매도하긴 힘들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변인을 통해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민의 귀농·귀촌 준비와 다를 바 없다"는 짧고 불친절한 답만 내놨을 뿐이다.
 논란을 키운 것은 문 대통령의 농업경영계획서에 기재된 '영농 경력 11년'이었다. 국회의원, 정당 대표, 현직 대통령 등으로 있으면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노영민 전 비서실장 등 측근들은 "수시로 내려가 유실수 등을 가꿨다"고 설명하지만, 옹색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제출한 농지취득자격증명과 농업경영계획서. 영농 경력을 11년이라고 적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이 제출한 농지취득자격증명과 농업경영계획서. 영농 경력을 11년이라고 적었다. [중앙포토]

 사실 농지 취득 허가가 난 것이 문 대통령이 기재한 '영농 경력' 때문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지법은 '농업 경영에 이용할 자'의 농지 소유를 인정한다"며 "신청인의 영농 의지와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담당자가 발급 여부를 판단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서류를 갖춰 신청하는데, 어느 공무원이 '영농 의지'가 의심스럽다며 퇴짜를 놓겠는가. 국민이 궁금한 것은 애초에 형식적 적법성 여부가 아니었다.

흐릿한 법에 기대 '적법' 주장
 대통령의 농지 취득의 합법성을 따지려면 퇴임 후 농사를 '제대로' 짓느냐를 봐야 한다. 농지법 시행령 제3조는 '농업인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1000㎡ 이상 농지에서 농작물 등을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농산물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자 등 4가지 조건이다. 문 대통령이 퇴임 후 이런 규정을 지키지 못한다면 계속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 단계에서 대통령의 농지 취득이 투기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농지 취득 후 형질변경을 받은 것도 경호동 건립 등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애초에 퇴임 대통령의 사저 문제에 형식적 법의 잣대만 들이대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경호 문제 등 공적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비판 세력 사이에서도 보수 야당의 공격이 대안 없는 꼬투리 잡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청와대가 먼저 사저 문제의 정치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홍보전문가 B씨는 "대통령이 사저 부지에 언론이나 주민들을 불러 농지 취득의 현실적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면 좋은 소통 전략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새 사저 부지

문재인 대통령 새 사저 부지

 청와대는 대통령의 귀촌·귀농 준비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은 '일반인'이 아니다. 법의 틈새나 관행이라는 편리한 그늘 속에 숨는 것처럼 비치지 않았는지 돌아봤어야 했다. "적법하다면 그런 줄 알아라"는 태도는 궁금증이 남은 사람들의 반발만 부를 뿐이다.

측근들의 파편적 설명과 물타기 전략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대통령 대신 측근들이 나서고 있다. 일부에선 전임 대통령의 사저 문제를 들먹이며 '물타기'도 시도하고 있다. 야당의 의혹 제기를 '정치 공세'라며 일축하는 태도도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측근들의 파편적 설명과 물타기는 공감의 폭을 넓히기보다는 갈등의 고랑만 파고 있다.
 문 대통령은 왜 직접 설명을 피할까. 대략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우선, 사생활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책 홍보를 중요시하지만, 사생활에 대해서는 입을 닫아 왔다. 딸의 동남아 이주 문제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공인'이다. 현대 민주주의 지도자라면 개인 신상 문제에도 개방적인 자세로 궁금증을 풀어 줄 의무가 있다. 둘째, 괜히 설명했다가 논란만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했을 수 있다. 농지법의 허점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농지 취득 이유를 '농업 경영'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정면 돌파를 택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궁금증은 더 커진다. 퇴임 후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소통 대신 지지세력 결집 전략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시 매곡동의 기존 사저 뒷산에서 산책을 하며 떨어진 감을 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시 매곡동의 기존 사저 뒷산에서 산책을 하며 떨어진 감을 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의 소통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난처한 현안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거나 유체이탈식 화법을 보여주는 일이 늘어났다. 조국 문제나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을 제때 정리하지 못하는가 하면 LH 문제에서는 남의 일인 듯 내각을 질책하다 결국 사과했다. 그 배경에는 현안에 대해 법조문부터 따지는 대통령의 '법률가 마인드'가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소통은 법을 넘어서는 역동적 정치 행위다.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법만으로는 곤란하다. 더구나 사저 논란에서처럼 허점 많은 법 규정에 기대 '적법'만을 강조하는 것은,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국민이 대통령에 바라는 것은 법률가의 모습이 아니다.
 청와대의 소통 이상은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한국갤럽의 문 대통령의 첫 직무 수행 평가였던 2017년 6월 1주 조사에서는 긍정 평가 이유 중 '소통 잘함/국민공감 노력'이 18%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 3월 2주차 조사에서 '소통' 비율은 3%에 불과했다. 소통을 내걸고 시작한 정권에서 소통이 길을 잃었다.

 최고 권력자의 침묵은 억측을 낳고, 억측은 불신으로 이어진다. 소통 대신 지지세력 결집으로 억측과 불신을 돌파하려는 것이 지금 청와대의 자세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군'으로 지칭하며 "대통령의 일을 모른다"며 모욕한 것도 이런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임기 말 지지세력 결집도는 완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전략이 끝까지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정제되지 못한 대응은 위기를 더 키운다 

정제되지 못한 즉각적 대응이 화를 부른 기업 위기관리의 대표적 사례는 2015년 터진 백수오 사건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시중 백수오 제품의 최대 원료 공급업체인 N사 원료에 이물질(이엽우피소)이 혼입됐다고 발표한 것은 그해 4월. N사는 소비자원의 발표에 즉각 반응했다. 원료에 문제가 없다는 반박 성명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며칠 뒤 식품의약안전처의 검사 결과 이물질 혼입은 사실로 밝혀졌다. 회사 신뢰성은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두 달 뒤 검찰이 "이엽우피소 혼입 정도가 작아 문제 될 게 없다"는 발표를 했다. N사로선 반전을 노릴만한 유리한 계기였지만 이미 금이 간 신뢰를 되찾긴 힘들었다. 한 홍보 컨설팅업체 대표는 "N사가 사태 발생 후 성급하게 대응한 것이 패착이었다"고 말했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소비자에게 사과와 사실 전달에 치중하면서 차분하게 검찰 판단을 기다렸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 위기관리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CEO의 직접 등장이다. 사고 등으로 비난을 받는 기업의 최고책임자가 대중 앞에 설 때는 진솔한 사과와 구체적 해결책 등을 들고나와야 한다는 것이 홍보 전략의 ABC. 당연히 세련되고 절제된 언어는 필수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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