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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지지율 1위라도···尹 대통령 못한다는 그들의 착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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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정치를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여론조사에서 적합도 1위를 기록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얘기다. 작년 이맘때 이 사태를 경고한 바 있다. 권력이 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하면 총장은 정치로 내몰리게 된다. 법치를 무너뜨린 게 정치라면, 그것을 세우는 일은 정치적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을 유력한 대선 후보로 만든 공신은 전·현직 법무장관들 #정권 반대자의 혐오 때문 아니라 법치 파괴에 대한 중도층의 저항 #정치 여부는 스스로 판단할 몫…출마 권리가 곧 대통령 자격은 아냐 #지금 이 나라의 가장 큰 과제는 정치의 윤리적 차원을 회복하는 일

누가 그를 정치로 내몰았는가

조국 사태 이후 당·정·청은 계속 검찰총장을 흔들어댔다. 노골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며 징계까지 했다. 그렇게 정치로 내몰더니 그 가능성이 현실화하자 부랴부랴 ‘윤석열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미 1997년에 헌재는 검찰총장의 공직 취임 제한을 위헌으로 판정한 바 있다. 급하니 위헌적 입법까지 한 셈이다.

그를 유력한 대선후보로 만든 공신은 전·현직 법무부 장관들. 조국 전 장관은 비리수사를 막으려 ‘검찰 쿠데타’의 프레임을 짰고, 추미애 전 장관은 그를 징계하려 했고, 박범계 장관은 ‘검수완박’으로 결국 그가 총장직을 지켜야 할 이유마저 없애 버렸다. ‘대선 후보’ 윤석열은 이렇게 탄생했다.

친여매체도 한 역할을 했다. 한겨레신문은 윤 전 총장이 성접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친여 성향의 검사가 확인 안 된 사실을 언론에 흘린 것이란다. 애먼 기자들 음해하더니 검언유착은 정작 자기들이 하고 있었던 게다. 그러더니 이제 그에게 “정치하지 마시라”(성한용 선임기자)고 훈수까지 둔다.

그 칼럼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정치 바람’이 들었다. 이유는 두 가지란다. 첫째, “여론조사에서 뜨면 멀쩡했던 사람도 눈이 돌아간다.” 둘째, 특수통 검사 출신이라 “프레임을 짜서 상대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과 닮은 데가 있기” 때문이란다. 인식이 다소 천박하다.

그가 정치하면 안 되는가

퍼스펙티브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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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대선주자로 띄웠단다. 하지만 정권이 그와 충돌할 때마다 지지율은 폭락하곤 했다. 그의 인기가 정권 반대자들의 정서적 혐오가 아니라, 정권의 법치주의 파괴에 대한 중도층의 저항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기자에게는 이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다.

정치인이 하는 일이 고작 프레임을 짜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인가? 국회 국민통합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89%가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하다고 대답했고, 그중 63.1%는 그 원인을 정치로 꼽았다. 이게 다 당·정·청이 손잡고 국민을 진영으로 갈라쳐 온 결과다.

기자는 윤 전 총장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첫째, 할 수 없다. 정치 경험과 국정 경험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을 할 수 없다. 윤석열 전 총장이 경제와 외교를 알까?” 경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재명 후보로부터 제 공약도 모르냐는 핀잔을 들었다. 외교? 무슨 외교를 ‘죽창’ 들고 하나.

“둘째, 될 수 없다. 지금 여론조사 수치는 반문재인 성향 유권자들의 화풀이에 불과하다. 거품이라는 얘기다.” 모든 여론조사 수치는 어차피 거품. 현 대통령 지지율도 80%를 웃돌다가 지금 30%대로 추락하지 않았는가. 그 지지율을 굳히느냐 마느냐는 하기 나름. 기자가 돗자리 깔 일은 아니다.

비리 수사를 막는 나라

“부패가 만연한 부패 공화국에서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부패 공화국이 아니다. 범죄율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렇게 깨끗한 나라에서 청와대 인사들의 범죄율은 왜 그리 높은지. 그래서 검찰총장이 대선 후보로 불려 나온 것 아닌가.

윤 전 총장에겐 “평생 쌓은 특수 수사 경험을 살려 대한민국 수사기관의 반부패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하란다.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해체하고, 수사권 조정으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 비리 앞에서 검찰의 발이 묶인 상황. ‘검수완박’ 외치며 검찰을 없애면 반부패 역량의 상실은 명약관화. 거기에 항의해 사퇴한 것 아닌가.

기자는 “천하의 윤석열 검사가 거악 척결이라는 풍운의 꿈을 안고 검사가 된 수많은 후배 검사들을 X팔리게 해서야 되겠는가”고 썼다. 윤석열 검사가 누구처럼 정권의 개 노릇 했던가? 정권 스피커 노릇하다가 청와대 들어간 기자, 윤석열 전 총장 비판하다 총장추천위원에 위촉된 기자가 있는 신문사. ‘X팔려서’ 어떻게 다니는지 모르겠다.

윤 전 총장이 정치를 할지, 하면 어느 쪽에서 할지 아직 모두 열려 있다. 벌써 견제에 들어가는 것을 보니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에게는 출마할 권리가 있고 명분도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 대통령의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판단은 출마 후에 어떤 정치를 할지 들어보고 내려도 늦지 않다.

권력의 유혹

기자는 “정치 경험과 국정 경험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치 경험이 많은 대통령 둘은 지금 감옥에 있고, 국정 경험이 많은 또 다른 대통령은 퇴임 후 감옥 안 가는 걸 국정 목표 삼고 있다. 반면, 체코의 하벨 대통령은 경험이 없는 문인이었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저널리스트라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이 나라엔 성공한 대통령이 없는가?’ ‘왜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정권이 그들이 청산한다던 그 세력이 되었는가?’ 우리는 이유를 안다. 경험은 풍부하나 철학이 빈곤한 대통령이 그 직에 따른 윤리적 기능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코펜하겐 대학 소닝상 수락 연설에서 하벨은 ‘권력의 유혹과의 싸움에서 패하기 시작한 이들’의 특징을 지적한다. “자기는 오직 국가에 봉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기를 설득하는 가운데 스스로 자신이 탁월하다 믿게 되고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이 정권 사람들의 특징이 아닌가.

하벨은 대통령의 특권 속에 살다 보니 “평생을 비판해 온 공산주의 살찐 괭이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고 고백한다. 국정 경험이 없는 그를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성찰의 능력이었다. “권력을 쥐었기에 나는 끝없이 나 자신을 의심한다.”

하벨과 대극을 이루는 것이 조국 전 장관이다. 그는 제 SNS에 ‘대선 진로 좋은 데이’ 소주병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썼다. “고향은 언제나 ‘원초적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의 대선 출정가에는 윤리적 성찰은 없고 오직 ‘원초적’ 본능만 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정치다.

성찰 없는 원초적 힘

딸의 입시 비리로 아내가 구속된 마당에 버젓이 남의 딸 입시부정 의혹 기사를 링크하는 것도, ‘검찰 쿠데타’라는 프레임을 짜서 검찰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도 다 그 ‘원초적 힘’의 발로이리라. 그 힘으로 그와 그의 친구들은 정치의 윤리적 차원을 폐기하고, 윤리의 최소한을 규제하는 법을 파괴해 왔다. 조국 전 장관은 이 정권의 표상이다. “부동산 부패는 검찰책임이 크다.”(추미애 전 장관) “수사권 있었을 때 검찰은 뭐 했냐?”(박범계 장관) “추미애 장관이 수사를 지시했지만 검찰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이낙연 선대위원장) 여기에 성찰은 없다. 그저 책임을 검찰에 돌리는 프레임이 있을 뿐이다.

정치는 언제 부도덕해지는가

야당이라고 다르겠는가. 결국 정치권의 이 보편적 무성찰과 무책임이 윤 전 총장을 대선후보로 불러낸 것이다. 그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말한다. 하지만 법은 그저 윤리의 최소한일 뿐. 법치의 파괴는 이 정권 사람들이 법의 토대가 되는 윤리와 도덕 자체를 무너뜨린 것의 결과일 뿐이다.

정치는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하벨은 말한다. “정치란 도덕적 감성, 자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능력, 진정한 책임감, 취향과 기지,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 절제의 감각, 겸손을 더 많이 강조하려는 인간적 노력이 행해지는 장소다.” 우리가 이를 믿지 않을 때, 바로 그때 정치가 부도덕해지는 것이다.

정치를 할지 말지는 그가 판단할 몫. 다만 그가, 아니 대권을 넘보는 모든 정치인들이 하벨의 연설문을 읽었으면 한다. 경제니 외교니 다 장관의 일. 대통령의 일은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가장 큰 과제는 정치의 윤리적 차원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대중이 그에게 투사하는 희망의 정체다.

기자는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벨은 말한다. “희망은 뭔가가 잘 되리라는 확신이 아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게 옳다는 확실성이다.” 정직은 최선의 방책, 원칙은 최선의 전술이다.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옳은 길을 가는 것 자체가 희망을 실현하는 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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