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로컬 프리즘

세종교육청이 소환한 ‘촛불혁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세종시교육청은 최근 『촛불혁명』이란 제목의 책을 관내 99개 모든 초·중·고에 배포했다. '느린 걸음' 출판사가 2017년 10월 발행한 이 책(450쪽)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2016년 10월부터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까지 시국 현장을 글과 사진 수백장으로 소개한 것이다.

세종시교육청은 배포 목적을 “민주시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마다 도서관에 비치해 민주 시민교육 자료로 활용하라”고 하달했다. 활용 방법을 전 교원에게 안내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내용은 민주 시민교육에 부적절해 보인다. 책 맨 앞에는 시인 박노해의 글이 등장한다. 그는 “독립투쟁과 8·15해방은 이승만이 말아먹었다. 4·19혁명은 박정희가 쿠데타로 탈취했다”고 썼다. “촛불혁명은 위기에 처한 세계 민주주의 희망과 의지를 주고 있다”며 “혁명은 최고의 학교”라는 문구도 보인다. 이에 교사들은 “이렇게 편향되고 선동적인 내용을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학생에게 어떻게 보여주냐”며 걱정한다. 박노해는 “혁명의 궁극 목적은 나 자신의 좋은 삶”이라고 했지만, ‘촛불혁명’ 이후 많은 국민은 “내 삶이 망가졌다”며 아우성이다.

세종시교육청이 배포한 ‘촛불혁명’ 책에 나온 광화문 촛불집회 장면. 김방현 기자

세종시교육청이 배포한 ‘촛불혁명’ 책에 나온 광화문 촛불집회 장면. 김방현 기자

이 책은 배포 과정에서도 비민주적이란 비판이 일었다. 교사들은 “‘책을 비치하기 전에 학교도서관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했다. 세종시교육청은 “책 활용 여부는 학교에서 알아서 결정하면 된다”고 해명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세력은 자기들만 민주주의를 하는 것처럼 행세해왔다. 민주화 운동 관련 행사는 전국 곳곳에서 연중 열고 있다. 대전 3·8민주의거, 대구 2·28민주운동 등의 기념일을 만들어 국가 행사로 치르고 있다. 최근 3·8민주의거 기념식이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대전시청에서 열렸다. 3·8민주의거는 대전고 학생 등이 이승만 정권에 항거해 시위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서는 반민주적인 게 수두룩하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징역 5년의 징역에 처하는 법을 만들었다. 또 국회에서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사람은 최근 법원에서 다른 모욕죄가 추가됨에 따라 구속 기간이 6개월 연장됐다. 그는 결국 11개월간 갇혀 있게 됐다. 많은 사람은 과거 군사정권 시설을 떠올린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자유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쯤 되면 집권세력이 원하는 민주주의가 어떤 민주주의인지 궁금해진다. 민주주의는 여러 형태가 있다. 북한도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이 정부는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이제는 중도 사퇴한 검찰총장까지 자유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나라가 됐다.

김방현 대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