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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공수처가 넘긴 이성윤 면담기록, 내용 빠져···황당한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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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장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하기 직전 주요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면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기관장인 공수처장이 사건 재이첩에 반대한 피의자의 면담 요청을 수용한 것부터 “부적절한 만남이자 공수처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진욱 “이성윤 만나 ‘재이첩 말라’ 들었다” 시인 #김학의 사건 檢이첩 “기소권 유보한 조건부 이첩”

더욱이 이 검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이자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또한 김 처장이 검찰로 사건을 넘긴 뒤 “수사 이후 다시 송치하라”며 조건부 재이첩을 한 점도 이 검사장과 협의에 따른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16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의 사실 확인 요청에 “관련 사건 재이첩(12일) 직전 이성윤 검사장과 만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면담이 이뤄진 건 김 처장이 검찰 재이첩 여부를 검토 중이던 지난 6~7일쯤이라고 한다.

16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뉴스1

16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뉴스1

“이성윤 변호인이 수차례 요청해 만났다”

김 처장은 “공수처 건물 3층 빈 사무실에서 공수처장(본인), 여운국 공수처 차장, 수사관이 이 검사장과 그의 변호인을 면담했다”며 “앞서 변호인이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조사도 (병행) 했다”라며 “면담 후에는 수사보고서를 남겼다”라고도 덧붙였다.

이 검사장 측은 김 처장과 면담 자리에서 “이 사건은 공수처에 전속 관할권이 있기 때문에 검찰에 재이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고 공개했다.

공수처 수장이 중요사건의 피의자를 만나 민원을 들어줬다고 시인한 셈이다. 게다가 김 처장은 12일 사건을 재이첩한 뒤 공문을 보내 “검찰이 수사를 마치면 다시 송치해달라.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혀 검찰 수사팀과 권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이성윤 “재이첩 말라”→김진욱 “기소권 뺀 조건부 檢 이첩”

김 의원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에 대해 공수처장이 공수처 차장과 함께 핵심 피의자를 만나고, 면담 직후에 한참 고민하다가 검찰에 재이첩한 것”이라며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 처장은 지난 3일 검찰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이후 9일가량 동안 고심한 끝에 12일 재이첩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김 처장은 이례적으로 1200자 가까운 장문의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직접 수사가 최선이지만 수사 인력이 준비되지 않은 현실적인 여건을 무시할 수 없었다”며 “불필요한 공정성 논란을 야기하거나 수사 공백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 지적에 김 처장은 “면담 요청이 상당하다고 판단해 면담했을 뿐”이라며 “이 검사장이라서 면담한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 검사장 면담과 사건 재이첩 결정은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당사자인 이성윤 검사장은 “공수처 수사 등에 대해 답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檢 “내용 없는 수사보고 넘겨…설렁탕 시켰는데 뚝배기만 온 꼴”

전문가들은 “김 처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을 했다”고 비판한다. 수사기관의 장이 피의자의 사적 민원을 들어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수원지검은 “공수처로부터 이 검사장의 변호인 의견서와면담 내용은 빠진 수사보고(면담자, 피면담자, 면담시간만 기재) 등의 서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장이 직접 중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피의자 조사를 하고 조서를 남긴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수사보고 형태라면 각종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보통 수사보고서는 수사관이 수사한 뒤 상부에 보고할 때 작성하는 것이라면서다.

수사보고 형식을 용인한다 해도 김 처장이 조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포함해야 할 ‘조서를 작성하지 않는 이유’를 빠뜨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제26조에 따른 해석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 처장은 사건을 재이첩하겠다고 발표할 때 수사 인력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그 전에 이 검사장을 만나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수사를 개시했다”며 “말이 안 맞는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수사를 개시해 놓고 왜 재이첩하기로 방향을 틀었는지를 집중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를 조사하면 조서를 남겨야 하고, 예외적으로 사소한 것을 확인할 때만 수사보고를 한다”며 “수사보고를 했는데 내용은 하나도 없는 건 설렁탕을 시켰는데 뚝배기만 온 꼴로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수사만 재이첩’ 논란에 김진욱 “법원 판단 받아야”

한편 이날 국회 법사위에선 공수처가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수사 후 공소 여부를 결정할 때 공수처로 송치하라”고 단서를 단 것에 대해 검찰이 강력하게 반발한 논란과 관련해서도 질의응답이 오갔다.

김 처장은 “검찰은 ‘공수처가 사건을 일단 이첩했으면 관여할 어떤 권한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건 이첩의 종류를 단순 이첩 하나만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사건 이첩을 할 때는 조건을 달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김 처장은 "이번 이첩은 ‘공소권 행사를 유보한 조건부 이첩’"이라며 “단순 이첩을 할지 조건부 이첩을 할지 결정하는 건 공수처장의 재량”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논란이 계속되면 사법부나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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