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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은지 손 잡고 매일 걷는 등굣길, 1학년 파이팅!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44)

은지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아침마다 새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 50대인 나도 덩달아 1학년이다. 은지와 매일 학교에 간다. 아침마다 가방을 열고 알림장이 있는지, 필통이 있는지 재차 확인한 다음 집을 나선다.

‘참 오랜만에 등굣길을 걷네?’ 문득 18년 전,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땐 둘째 아이를 포대기로 업고, 오르막이 있는 등굣길을 걸어갔다. 개나리랑 목련이 줄줄이 피었지만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우리 아이, 우리 아이만 클로즈업돼 보였다. 멀리 있어도 금세 찾을 수 있는 우리 아이. 웃음소리만 들어도 금세 알아채는 우리 아이. 엄마인 내 주파수는 오직 우리 아이에게 맞춰져 있었다.

첫째 아이 손을 잡고 등에 업은 둘째 아이를 어르며, 땀이 나도록 등굣길을 걸어가면 초록빛 교문이 보였다. 그제야 손을 놓고 어서 들어가라고,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참지 말고 바로 가라고, 여러 번 당부하며 손을 흔들었었다.

은지는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학교생활은 당연히 잘할 것이다. 학교생활뿐인가, 은지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사진 pixabay]

은지는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학교생활은 당연히 잘할 것이다. 학교생활뿐인가, 은지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사진 pixabay]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면 걱정이 슬금슬금 일었다. 혹시 학교에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진 않을지, 혹시 너무 소심해서 할 말을 못하고 끙끙 앓진 않을지…. 걱정, 또 걱정이었다. 그땐, 나도 초보 학부모라 모든 게 낯설고 어설펐다.

이젠 포대기로 업을 아기도 없고, 두 아이는 모두 성인이 됐다. 그리고 다시 은지를 만나 위탁엄마가 됐다. 올해는 또 하나의 이름 ‘학부모’가 됐다. 다시 초보가 된 듯 어리둥절하고, 낯선 요즘이다.

“은지야, 은지는 소중한 사람이야!” 나이 든 학부모, 초보 같은 학부모지만 예전처럼 걱정을 하진 않는다. 걱정하는 대신 은지에게 믿음을 준다. 1학년 생활이 걱정될 때마다, 은지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이야기 한다. “엄마가 쓰러질 만큼 피곤해도 은지를 보면 힘이 나! 은지가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래.”

은지는 마법 같은 아이다. 밤잠을 설친 날에도 은지를 보면 힘이 난다. 엉덩이를 흔들고, 입술을 쭉 내밀며 뽀뽀하는 은지를 보면 봄꽃처럼 환한 웃음이 피곤을 뚫고 팡팡 터진다. ‘그래, 힘들지만 이게 축복이구나’ 확신한다.

“은지는 어떤 사람?”
“소중한 사람!”

은지는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학교생활은 당연히 잘할 것이다. 학교생활뿐인가, 은지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아는데, 인생을 잘 살지 않겠는가.

봄꽃도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데, 사람은 어떻겠는가? 한사람, 한사람 모두 소중한 사람이다. [사진 pixabay]

봄꽃도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데, 사람은 어떻겠는가? 한사람, 한사람 모두 소중한 사람이다. [사진 pixabay]

18년 전 걱정 많던 초보 엄마는 이제 느긋함을 부리고 있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는 걱정은 내게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왁자지껄한 등굣길에 뽀얀 목련이 만개했다. 나뭇가지마다 봄 햇살에 새순이 돋고 있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두리번거리며 그 길을 걸어간다. 나도 은지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이제 막 개화하는 벚꽃을 보았다.

“어머, 벚꽃 좀 봐!”

봄꽃도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데, 사람은 어떻겠는가? 한사람, 한사람 모두 소중한 사람이다. 그걸 안다면 학교생활은 문제없을 것이다. 기대 되는 새 학기다. 1학년 파이팅!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질병, 사망,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기간 동안 양육해 주는 제도다. 입양은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해야 되지만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의 사정이 나아지면 친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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