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친엄마 만난 은지가 헤어지면서 외친 말

중앙일보

입력 2021.02.15 15:00

업데이트 2021.02.15 15:53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42)

은지가 친엄마를 만나는 날이었다. 기분 좋은 햇살이 은지를 흔들어 깨웠다.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머리도 예쁘게 묶었다. 훌쩍 큰 은지를 보고 친엄마는 어떤 생각을 할까? 7년 전, 은지를 떠나보낼 때는 젖병이랑 딸랑이, 옷가지를 챙기며 한없이 울었던 엄마다.

“은지야! 000엄마(친엄마) 만나면 어떤 얘기하고 싶어?”
“음, 은지가 뱃속에 있을 때 배가 얼마큼 뚱뚱했는지. 히히 ”
“그래, 은지가 궁금했던 거 다 물어봐?”

은지가 색종이로 만든 카드. [사진 배은희]

은지가 색종이로 만든 카드. [사진 배은희]

친엄마는 장애인 생활시설 ××에 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안 되는 상황인데 은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꼭 보고 싶다고 해서 조건부 허락을 받았다. 은지는 친엄마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고, 친엄마에게 줄 카드도 직접 만들었다. 색종이를 오리고 붙여서 정성껏 만든 카드에 또박또박 글씨를 썼다.

‘저를 나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지-’

친엄마가 사는 ××은 제주시에서 50분 정도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우린 가정위탁센터 담당자와 함께 출발했다. 은지는 차 안에서도 카드와 유치원 졸업앨범이 든 가방을 꼭 쥐고 갔다.

××시설 입구에 들어서니까, 개 세 마리가 컹컹 짖으며 뛰어왔다. 바짝 긴장한 은지가 내 품에 안겼다. 우리는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 마당 한켠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햇살이 비치는 오후라 춥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00씨 나올 거예요!”

조금 있으니 검은색 옷을 입은 친엄마가 나왔다. 은지는 자기 가방을 꼭 쥐고 그 걸음을 유심히 쳐다봤다. 친엄마가 은지에게 다가오더니 피식 웃으며 작은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은지도 가방에서 얼른 카드를 꺼내 쑥 내밀었다.

뭔가 서먹서먹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강한 DNA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반듯한 이마, 짙은 눈썹, 뽀얀 피부가 영락없이 닮아 있었다. 은지를 처음 보는 ××시설 관리자도 “닮았네요. 닮았어.” 하며 껄껄 웃었다.

은지랑 친엄마.

은지랑 친엄마.

은지는 친엄마가 준 선물을 뜯어보았다. 털실로 짠 목도리 2개, 모자, 지갑, 세뱃돈 2천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꼭꼭 눌러 쓴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은지는 선물을 먼저 뜯어보고, 또랑또랑 편지도 읽어 내려갔다.

“은지야, 내가 사랑하는 은지야. 학교 입학한 걸 정말 축하해. 엄마가 입학식에 가고 싶었는데 입학식 가는 대신 손편지를 남길까 해. 엄마가 부족하지만 아주 작은 선물이 있어. 엄마가 손으로 짠 목도리 2개와 모자 1개를 은지한테 줄게. 책도 열심히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착한 은지를 응원할게. 다음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엄마가 열심히 만들어 볼게”

은지가 편지를 다 읽고 깔깔 웃었다. 친엄마는 그런 은지를 바라보며 또 눈가가 빨개졌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내 눈에서도 주르르 오후의 햇살이 흘러내렸다. 은지를 가운데 두고 두 엄마가 촉촉하게 바라봤다.

“은지 많이 컸죠?”
“예…….”

친엄마도 은지가 만든 카드를 읽었다. 알록달록 색종이 카드에 적힌 반듯한 글씨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흐뭇해하기도 했다. 은지는 금세 친엄마를 향해 웃었다. 웃는 모습도 어쩜 그리 닮았는지. 서로 떨어져 있어도 혈연은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는가 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프로리앙은 ‘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라고 했다. 은지는 낳아주신 엄마, 길러주신 엄마의 품속에서 더 안전하게 자랄 것이다. 두 엄마가 끝까지 함께 할 테니까.

우린 30분쯤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사진을 찍고, 서로 안아주고,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친엄마는 ××시설 입구까지 걸어 나와서 은지가 차를 타는 걸 지켜봤다.

은지 친엄마가 준 선물.

은지 친엄마가 준 선물.

차가 천천히 출발하는데 친엄마는 들어가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망주석처럼 서서 손을 흔들다가 눈가를 닦다가, 또 손을 흔들다가 눈가를 닦아냈다. 그때 은지가 창문을 열고 친엄마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요!”

참고 있던 목울대가 파르르 떨려왔다. 이게 혈연의 힘일까? 여덟 살 은지는 이렇게 자신의 출생과 성장을 만나고 있다.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학대, 질병, 사망, 수감, 이혼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양육해 주는 제도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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