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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은 선거를,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걱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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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호 25면

콩글리시 인문학

“한마디로 정치란 무엇입니까?” 어떤 기자가 물었다. “다 국민 속이는 짓이여!” 오래전 타계한 원로정치인 이재형(李載瀅·1914~ 1992) 전 국회의장이 정계 은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잘살게 해 주겠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겠다, 온갖 감언이설로 유권자를 유혹하지만 정작 우리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졌던가? 일자리정부라더니 1월 말 통계청 발표를 보면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100만 개나 사라졌다. 국민 삶은 파탄지경인데, 살판 난 건 그 잘난 선출직 권력과 공직자들이다. 21세기 현대국가는 작은 정부, 깨끗한 정부를 지향해야 할 터인데 문재인정부 4년 공무원 증원 목표가 17만 명이라니 거꾸로 가는 세상이다. 일본은 인구 1억2000만명에 공무원 수가 30만 명인데 한국은 인구 5000만 명에 공무원 수가 120만 명이라고 한다. 일본은 인구 400명당 공무원이 1인인데 우리나라는 42명당 공무원이 1이라고 하니 한국은 일본에 비해 공무원 수가 몇 배나 많은 나라다. 돈을 벌고 싶으면 기업으로 가고 봉사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돼야 하는데, 편안한 삶을 위해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 일자리는 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라 기업이 만든다. 기업을 옥죄기만 하는 탓에 일자리는 사라지고, 공약을 지키려니 손쉽게 공무원을 증원하고 알바만 양산한다. 오죽하면 대통령도 역대급 고용위기라고 했을까. 늘어난 알바가 9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폴리티션, 행정가서 의미 변질 #셰익스피어, 모사꾼으로 묘사

정치인을 가리키는 politician은 셰익스피어 시대에 처음 쓰였다고 하는데 당시 신중한 뜻을 가진 형용사 politic에서 정치적 의미가 생겨났다. 지금도 body politic(국민, 국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politic은 점차 부정적인 느낌이 더해져서 교활하다거나 철저히 자기 잇속만을 차린다는 뜻으로 굳었다. politician은 두 얼굴을 가진 단어다. 처음엔 행정에 능한 사람을 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사꾼으로 바뀐다. 정치인이 아니라 정상배(政商輩)라는 의미다. 셰익스피어는 어떤 사람을 모욕적으로 묘사할 때 politician이라고 했다. 리어왕은 politician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지칭했다. 햄릿은 무덤 파는 광대가 해골을 던지며 장난치는 것을 보면서 그 해골이 politician의 것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 이렇듯 politician에는 정치인을 조롱하는 강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CNN은 정치꾼을 political hack로 쓰기도 했다. 송평인은 우리 일부 정치인을 thug(불량배)라고 말했다. 민주당을 보면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 생각난다. 정치꾼은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눈다. 도구 아니면 적이다(A politician divides mankind into two classes: tools and enemies).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데 능한 여당은 국민을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몬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면 무책임한 언사로 유권자들을 유혹한다. 선거 때 유권자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후보들도 많다. 이렇게 구걸해서 금배지만 달면 태도가 돌변한다. 일찍이 애덤스는 선거가 끝나면 노예제가 시작된다고 했다. 뽑힌 자들은 초심을 잊고 완장 차고 국민 위에 군림한다. 다음 선거를 걱정하는 자들은 정치꾼(politician)들이고,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것은 훌륭한 정치인(statesman)들이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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