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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LH ‘땅 장사’ 그만할 때가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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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경제에디터

주정완 경제에디터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제대로 농사를 짓지도 않을 거면서 서류를 조작해 개발 예상지역에서 농지를 사들였다. 그곳에는 생소한 왕버들 나무를 촘촘히 심어놨다. 토지개발에 따른 보상을 노린 것 말고 다른 설명은 불가능하다.

40년 전 ‘LH 특혜법’ 아직 유효 #신도시 만들 때마다 투기 의혹 #밀어붙이기식 개발 최소화해야

이번 사건을 단순히 몇몇 직원의 일탈로만 볼 수 없다는 정황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토지주 명단을 대조해 본 게 고작이다. 어쩌면 이번에 걸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순진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진짜 선수’는 차명 거래로 이미 빠져나갔을 것이란 의심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현재 조사 방식으로는 실명이 아닌 차명 거래까지 제대로 밝혀내기 어렵다. 합조단에서 검찰과 감사원을 제외한 이 정부에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곧 임기 4년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다. 지난 4년간 집값과 전셋값 급등은 무주택 서민들에게 극심한 좌절감을 안겼다. 이번 LH 투기 의혹은 더 참을 수 없는 결정타였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약속했던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은 소수의 짬짜미와 특혜로 얼룩져 버렸다. 그러니 정의로운 결과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또다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는 없다. 비리를 저지른 다음에 부당한 이익을 환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처음부터 비리를 저지를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LH의 역할과 기능을 진지하게 재검토해봐야 하는 이유다.

LH의 핵심 사업 모델을 요약하면 ‘땅장사’라고 할 수 있다. 민간이 소유한 땅을 강제로 거둬들여(수용) 그 땅을 갈아엎은 뒤 민간 건설사에 비싸게 되파는 방식이다. LH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막강한 법률의 뒷받침이 있어서다. 1980년 12월 전두환 정부 때 제정한 택지개발촉진법이다. 현 정부의 주축인 86세대 운동권이 그렇게 미워했던 신군부의 주도로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에서 만든 법률이다.

심하게 말하면 이 법은 ‘LH 특혜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신도시나 택지지구로 지정하면 주민들은 원치 않아도 사업 시행자인 LH 등에 땅을 넘길 수밖에 없다. 사유재산 침해나 보상가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LH의 신속한 사업 진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다른 20개 법률에서 정한 인허가 절차는 모두 생략한다.

과거에는 이렇게 밀어붙이기식으로 신도시를 개발하는 게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이제는 최소화할 때가 됐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50%대에 그쳤던 80년대의 고루한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냈던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 법을 ‘천하의 악법’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법률의 무분별한 적용이 얼마나 가공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모든 위정자가 깨닫고 깊이깊이 후회할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는 말도 남겼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신도시 개발을 지속하는 한 내부 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의 재발을 막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이번 LH 투기 의혹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신도시를 개발할 때마다 은밀한 곳에선 비슷한 수법의 땅 투기가 벌어졌을 공산이 커 보인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에겐 다시 한번 크게 실망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인사청문회 때는 도심 역세권의 용적률 상향으로 주택공급을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취임 두 달도 안 돼 신도시 개발을 들고 나왔다. 집값 안정을 위해 대규모 주택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는 건지 의문이다.

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제가 국토부로 온 게 지난해 12월 29일인데 그 전에는 한 번도 (광명·시흥 신도시를) 검토한 적이 없다. 지난 1월부터 한 달 정도 검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맞는다면 광명·시흥 신도시는 졸속이란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서울 여의도 10배 면적의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검토 기간이 한 달에 불과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자신이 사장으로 있었던 LH 직원들을 감싸려는 변명이었다면 더 큰 문제다. 변 장관은 이미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투자한 게 아닌 것 같다”는 발언으로도 물의를 일으켰다. 변 장관이 그대로 있는 한 국토부가 참여하는 합조단의 조사 결과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주정완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