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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썩은 물 만든 게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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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빈 엘리베이터에 한 사람이 탔다. 그는 늘 하던 대로 몸을 180도 돌려 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섰다. 그 뒤 여럿이 뒤따라 탔다. 그들은 들어온 방향 그대로, 즉 입구 반대편으로 얼굴이 향하도록 섰다. 그 결과 처음 탄 사람이 여러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입구 반대편에도 문이 있는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다. 타고 내리는 문이 하나인 평범한 형태였다.

사람은 대세에 편승하게 돼 있어 #상류에 오염물질 잔뜩 쏟아붓고 #탁한 하류 욕하는 건 지독한 위선

처음 탄 사람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눈치를 봤다. 엘리베이터가 2층에 도달하자 한 사람이 더 탔다. 그도 들어온 방향 그대로 자리를 잡고 섰다. 처음 탄 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는 45도쯤 어정쩡한 각으로 몸을 틀었다. 3층에서도 한 명이 더 탔다. 그 사람도 문을 등지고 섰다. 처음 탄 사람은 몸을 슬금슬금 더 돌렸다. 90도쯤의 엇각이 됐다. 4층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처음 탄 사람은 소심한 ‘저항’마저 포기했다. 과감하게 몸을 돌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섰다. 굳었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결국 2∼3분 만에 모든 사람이 한 방향을 보는, 질서정연한 통일이 이뤄졌다.

수년 전에 한 방송사가 내보낸 몰래카메라 실험 장면이다. 처음 탄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나머지는 각본에 따라 연기했다. 이 실험 고안자는 미국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1907∼96)다. 그는 인간의 동조·순응(conformity) 성향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했다. 엘리베이터 승객 바보 만들기가 그중 하나다.

첫 탑승자가 비정상(층수 표시등을 보기 어려우니 비효율적이고 버튼 조작도 불편하다)에 합류한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대세를 따르는 게 편해서 또는 그곳 규칙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에. 애시의 실험은 인간의 판단력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집단의 풍토나 분위기가 구성원의 행동을 얼마나 빨리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쯤에서 최근의 과거를 돌아보자.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수상한 주식 투자를 한 게 인사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됐는데, 대통령이 임명장을 줬다. 법무부 장관의 가족이 온갖 부정행위를 동원해 다른 젊은이 몫의 의학전문대학원 자리를 도둑질했다. 그 가족은 법원 판결을 받고도 대법원에서 확정된 게 아니니 죄가 없다고 한다. 후임 장관은 그 가족을 향해 “장하다”고 했다. 반어법을 쓴 게 아니라 진짜 칭찬이었다. 위안부 피해자 성금을 횡령한 이는 버젓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다.

부동산 문제에 국한해 보면 이렇다. 대통령 부인 친구인 정치인은 지방 도시 부동산을 가족 명의로 산 게 문제가 됐다. 그는 법원에서 권력을 이용해 개발 정보를 입수했다는 판단을 받고서도 “남들도 다 아는 정보였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가 투기 근절을 외치던 때 ‘영끌’을 해 재개발 지역 건물을 사들인 당시 대변인은 며칠 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청문회에서 농지 매수 사실이 드러난 장관 후보자는 의사인 부인이 15년간 농사를 지었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임명장을 받았다. 대통령이 퇴임 후 기거할 사저 부지에 농지가 포함돼 있고 형질 변경(택지로)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는 “불법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왜 불법이 아닌지를 조목조목 설명하지 않는다.

지도층이 법 또는 규범을 어기고도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니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된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게 부질없어진다. 꿋꿋이 홀로라도 엘리베이터 문 쪽을 보고 서 있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신재민 전 서기관과 현모씨(추미애 전 장관 아들 휴가 문제 제보자)처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에게 죄가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상류에 오염물질을 쏟아붓고서 하류에 맑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목소리 높이는 자들의 위선을 말하려는 것일 뿐이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