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섬 낙후된 시골 살린 주민들의 마을 디자인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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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칠리 섬의 파바라 마을. 10년 간 '팜 컬쳐럴 파크' 프로젝트가 추진된 이곳은 현재 세계 미술 애호가들을 불러들이는 곳이 됐다.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이탈리아 시칠리 섬 남부의 시골마을 파바라.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로 악명 높은 마을이었다. 시칠리아의 대표 관광지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에서 불과 8㎞ 거리에 있지만, 그 어느 관광지도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버려진 동네였다. 하지만 2010년 팜 컬쳐럴 파크(Farm Cultural Park)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이곳은 전 세계 예술가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예술마을로 탈바꿈했다. 2019년엔 '카운트리스 시티즈(Countless Cities)'란 제목으로 비엔날레가 생겨났을 정도다.

제2회 휴먼시티디자인어워드 #서울디자인재단 주관 국제상 #카운트리스 시티즈의 도시재생 #심사위원 "창의적 디자인 사례"

서울디자인재단(최경란 대표)이 주관하는 제2회 휴먼시티디자인어워드 대상에 이탈리아의 '카운트리스 시티즈'가 선정됐다. 일상이 행복한 도시, 미래 도시의 비전을 제시한 디자인 프로젝트(디자이너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국제적인 상이다. 2019년 제1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작은 도시 두눈(Dunoon)에서 주민들을 위해 추진한 혁신 프로젝트가 대상으로 선정된 데 이어 이번엔 예술과 디자인이 만나 이뤄낸 도시 재생사업이 대상에 뽑혀 1억원의 상금을 차지했다.

올해 휴먼시티어워드엔 세계 31개국 99개 프로젝트가 응모에 참여했다. 이는 25개국 75개 프로젝트가 응모했던 2019년에 비해 32%가 증가한 것으로, 이 상에 대한 세계 디자인계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대상은 도시연구와 디자인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단의 회의와 심사위원단의 토론을 거쳐 선정했다.

시골 마을의 비엔날레

파바라 마을에서 열린 비엔날레 카운트리스 시티즈의 현장.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팜 컬쳐럴 파크와 카운트리스 시티즈를 추진한 변호사 출신의 소셜 디자이너 안드레아 바르톨리. 예술을 통해 내가 사는 지역을 바꿔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카운트리스 시티즈는 동네 골목골목을 현대 미술품 전시 및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야심 찬 프로젝트다. 동네의 건물 외벽을 거대한 그림을 위한 캔버스로 사용하고, 미로 같은 골목과 광장, 작은 석조건물들을 조각·회화 등 미술품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동네에는 갤러리가 속속 새로 생겨나고 찻집과 서점, 샌드위치 가게와 샴페인 바 등이 활기를 띠었고 유럽 각국에서 한 해 12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변호사인 안드레아 바르톨리(Andrea Bartoli)가 마을의 버려진 집을 사들여 미술품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쓰면서 시작됐다. 이후 사진작가와 도시계획가, 대학 등 공공·민간이 두루 참여하며 일이 커졌다. 미술 애호가로 틈만 나면 세계 곳곳을 여행한 바르톨리는 "흥미로운 것들을 보기 위해 항상 뉴욕이나 런던 같은 곳에 가야 하는 일에 지쳤다. 우리가 사는 지역을 변화시키고 개선할 방법을 찾고 싶어 시작했다"고 말했다. '7인의 이모들'이라고 불리는 노인 여성을 포함해 지역 주민들이 파빌리온 구축 등의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다. 어린이 건축학교 등의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세계 예술가들이 공공미술 작품 설치를 위해 줄줄이 찾아왔다. 바르톨리는 온라인 인터뷰에서 “마피아로 낙후됐던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치자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며 "앞으로도 이 프로젝트를 공공 공간 확대, 미래 세대의 교육 등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창조도시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휴먼시티디자인어워드 심사위원장인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는 “팜 컬쳐럴 파크는 주민들이 도시의 미래를 꿈꾸고 디자인하고 스스로 개선함으로써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놀라운 사례”라고 평했다.

브라질, 홍합 폐기물을 타일로 재생

홍합 껍데기를 도시를 살리는 수입원으로 탈바꿈 시킨 브라질 베르겔 마을.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홍합 껍데기를 활용해 탄생한 베르겔 마을의 타일.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올해 다른 대상 후보작들도 쟁쟁했다. 브라질 베르겔 마을의 ‘스루루 다 문다우(Sururu Da Mundau)’ 프로젝트는 폐기물로 만든 제품으로 지역 경제에 숨을 불어넣은 사례로, 한 달에 300톤 가까이 버려지는 홍합껍데기를 타일로 제작해 마을의 수입원을 창출했다. 심사위원들은 폐기물로 고통받던 마을이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은 점을 높이 샀다.

싱가포르 기반의 건축사무소(LOOK Architects)가 설계한 고원형 산림 산책로 ‘푸저우 어반 커넥터(Fuzhou-Urban Connector)’도 주목받았다. 중국 푸저우 내 자연산림에 6개의 데크 모듈과 스틸 격자를 활용해 만든 총 길이 19km에 달하는 이 산책로는 자연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성을 향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비행기 교차로 옆 슬럼을 일으킨 인도네시아의 ‘에어본 닷 반둥(Airborne.bdg)’, 추모 공간을 일상의 행복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한국의 ‘에덴 낙원 메모리얼(Eden Paradise Memorial)’ 프로젝트 등이 눈길을 끌었다.

코끼리와 사람이 상생하는 개념으로 도시 재생을 추진한 태국의 '엘리펀트 월드'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싱가포르 건축설계사무소가 설계한 중국 푸저우 어반 커넥터.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비대면 시대 심사, 실험과 도전

올해 휴먼시티어워드는 비대면으로 이어진 심사과정 자체도 새로운 실험이었다. 국내외 전문가 12인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10차례 열렸고 5명의 심사위원이 3차례의 심사회의를 거쳐 10팀의 최종 후보와 대상을 선정했다. 심사위원은 랜드리 위원장을 비롯해 스테파노 미셸리(이탈리아 베네치아대 경영학 교수), 아냐 시로타(미국 미시간대 타우브만 건축도시대학 부교수), 루 샤오보(중국 칭화대 예술디자인아카데미 학장), 김승회(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