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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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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신세계그룹 야구단이 팀 명을 ‘SSG 랜더스(LANDERS)’로 확정했다. (…)인천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대한민국에 첫발을 내디딜 때 처음 마주하게 되는 관문 도시이며, 대한민국에 야구가 처음 상륙한 도시이기도 하다.’ SK 와이번스 야구단을 인수한 신세계그룹의 새 구단명 및 배경 설명 보도자료 일부다.

랜더스는 ‘상륙자’다. 축구가 1882년 제물포항(인천항)에 정박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를 통해 이 땅에 상륙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야구는 지금껏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를 통해서 도입했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인천이 야구가 처음 상륙한 도시라니.

1995년 발간된 『인고(인천고) 100년사』에는 일본영어야학회(인천고 전신)에 다닌 후지야마 후지사와(藤山藤芳)의 1899년 2월 3일 자(음력) 일기가 수록돼 있다. ‘3시 근무가 끝난 다음 4시경부터 나카야마 군을 불러내어 일연종 앞 광장(현 인천 중구 답동)에서 아카마쓰 선생, 후지무라, 사토 씨, 히라이 선생, 나카야마 군 그리고 우리들과 함께 ‘베이스볼’이라는 서양식 공치기를 시작하고 5시경에 돌아와 목욕탕에 갔다.’ 질레트에 6년 앞선 인천 야구의 기록이다.

랜더스는 ‘착륙선’이다. 1969년 7월 16일 지구를 떠난 아폴로 11호는 19일 달 궤도에 도착했다. 사령선인 컬럼비아호에서 분리된 착륙선 이글호는 20일 달 표면에 착륙했다. 이글호에는 아폴로 11호 승무원 중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만 탔다. 나머지 한 명 마이클 콜린스는 달 궤도에 가고도 그냥 지구로 돌아왔다. 콜린스는 1976년 펴낸 에세이 『플라잉 투 더 문』에 이렇게 썼다.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아폴로 11호 비행에서 왜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착륙을 하고 당신은 사령선에 남아 있었나요? 그런 결정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  나는 대답을 어물쩍 넘겨버린다. 나 역시 그런 결정이 내려졌을 때 상당히 낙담했다.’  착륙선이 무사히 돌아오려면 누군가는 남아서 사령선을 조종해야 한다.

한국 최초의 야구, 인류 최초의 달 착륙 등 다들 가장 앞선 것만 얘기한다. 하지만 야구의 원리는 그렇지 않다. 후속 타자의 득점타가 없으면 앞선 진루는 점수가 되지 못하고 잔루로 끝난다. 우리가 랜더스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장혜수 스포츠팀장